[왕방산 기행] 정상에 올라 신라 왕이 이곳을 왜 왔을까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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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방산 기행] 정상에 올라 신라 왕이 이곳을 왜 왔을까를 생각하다
  • 하승완 기자
  • 승인 2021.04.06 11: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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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돌아 먼 길을 돌아 돌아 올 거야∼. 함께 웃었고, 함께 울었던 그 세월 너무 정다워∼” 노랫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청명인 4일 이른 새벽 호병골을 걷는다. 흐르는 계곡 물소리와 벚꽃과 개나리, 진달래꽃이 새 소리와 어우러져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상쾌함을 선물을 준다. 멍하니 얼마쯤 갔을까? 폭포처럼 생긴 작은 물줄기가 개나리꽃과 나란히 봄의 소식을 전한다.

 

봄의 정취는 걷는 이의 발걸음에서 지나간 세월을 돌이키게 한다.
청춘이었던 20대 시절, 뭐가 그리 불만이 많았든지 세상이 변하기를 원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세상을 바꿔 보겠다고도 생각 했지만,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 나이가 좀 더 들어서는 내가 사는 지역이 변하길 바랬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이젠 중년 중턱을 지나면서 내 가족이 변하기를 바래 보지만 이 또한 어렵다는 걸 이제는 안다.

차라리 내가 좀 더 빨리 변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자신조차 바꾸지 못하면서 가족을 그리고 지역사회를,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했던 게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철부지같은 일이었던가를 이제야 깨닫는다.

이런 저런 생각에 무거운 발걸음은 천년고찰 왕산사에 다다르게 했다.
왕이 방문했다고 해서 유래된 왕방산 그리고 왕산사. 왕산사 입구에는 봉산사본말사약지를 인용해 “서기 877년 신라 헌강왕 3년에 도선국사께서 창건하자 왕이 친히 방문하여 격려해 주었으므로 산 이름을 왕방산(王訪山) 절 이름은 왕산사(王山寺)라 하였다. 이에 앞서 헌강왕이 도선국사의 높은 덕을 흠모하여 자주 궁중으로 보셨던 역사적인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절에도 헌강왕이 왕림했을 수 있으리라는 추측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적혀 있다.

왕방산 유래에 적혀진 문구를 보면서 궁금증은 더해졌다. 신라 때 현재와는 달리 말과 가마를 타고 다니던 시절, 이곳까지 왕이 왜 방문했을까? 게다가 역사기록에 의하면 헌강왕이 왕방산을 방문했다는 877년은 왕위에 오른지 3년째 되는 해다. 왕위에 오른지 얼마되지 않은 헌강왕이 천리도 넘은 포천에 왜 방문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도선국사의 덕을 흠모했기에 그 먼 곳을 찾았다고 하기엔 너무도 이해하기 힘들다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 봤다.

왕산사 들러 약수를 한 모금 들이키니 갈증이 해소된다. 발길이 관모봉 쪽으로 향한다.

 

관모봉까지는 그리 힘든 산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지도 않다. 그곳에 다다르자 수려한 바위가 막 피어나는 진달래꽃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바위에 매달려 피어난 꽃은 새삼 경이스럽기까지 했다.

26년전 32세라는 맨발의 청춘이었던 시절, 고향을 멀리하고 천리타향 포천으로 건너 왔다. 지금은 그럭저럭 살아가는 인생이지만, 그때는 왜 그리 불만이 많았던지, 잠을 설치며 많은 세월을 보냈다. 가진 것은 변변치 않아도 많은 응원해 주고 성원해준 덕분에 살아가는 인생, 포천사람과 사회가 고맙게만 여겨진다. 포천사회를 위해 뭔가는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가끔 들게 한다.

옛날 벼슬아치들이 쓴 모자 모양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관모봉. 멀리서 보면 마치 모자 모양새로 보인다. 여기에 최근 몇 년 동안 왕수산악회가 꽤 넓은 면적에 진달래를 식재, 이맘때면 진달래꽃이 만발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산에 오르는 동안 봄 풍경에 취하고, 지난달을 돌아보며 걷다 보니,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정상에 오르는 시간이 평소보다 많은 소요됐다.

팔각정을 지나 왕방산 정상에 도착하니 오전 8시 가까이 된 시각이다. 왕방산이라고 새긴 표지석이 보인다. 소나무도 멋들어진 자태를 자랑한다. 평소에 보지 못한 문득 삼각점이라고 새겨진 작은 돌이 보인다. 그 뒤에는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원이 삼각점이라고 새겨진 화강석이 놓여져 있다. 경도와 위도, 표고 등의 지리 좌표라고 하는데 국토의 공간정보와 다양한 사용을 위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지표라는 글귀가 써 있다. 이곳 왕방산 정상이 인근 지역의 바라보는 기준점이라는 생각에 포천시가 어쩌면 한반도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망상을 해 본다.

 

왕방산 정상은 동두천시와 경계를 이룬 곳이다. 동두천시에서는 왕방산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모양이다. ‘이야기가 있는 동두천 6산 종주 스탬프투어’라는 글귀를 새긴 빨간색 함에는 스탬프가 놓여져 있다. 동두천시의 남다른 행정력을 묻어 나온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왕방산은 포천의 명산인데도 포천시가 명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내려오는 길은 등산로가 아닌 잡목이 우거진 계곡을 선택했다. 얽키고 섥킨 계곡의 잡목은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라고 한다. 어느 곳인지 분간할 수 없지만, 갈 때까지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왕산사 근처로 내려왔다. 잡목의 계곡은 지나가는 길손에게 머리와 허리를 굽혀가며 세상을 살라고 하는 것 같다. 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느 책, 아래는 긍정이와 웃음이의 마음공부 여행 시리즈에 나온다.
긍정이와 웃음이가 인도의 성스러운 겐지스강을 건너고 있었다. 강은 무척 평화스러워 보였고, 사공은 젊었으나 깊은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긍정이가 “사공을 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사공은 “40년입니다. 5살 때부터 노를 저었죠”
긍정이가 “행복하신가요”라고 물었다. 사공은 “그럼요”
긍정이 “힘들지 않으세요?”, 사공 “힘들죠, 수입도 적고요”
긍정이 “그런데도 행복하세요”, 사공 “그럼요. 여행은 힘들지 않으세요”
긍정이 “힘들죠” 이후 잠시 할 말이 없었다.
사공 “힘든 것과 행복하지 않은 것과는 별 상관이 없지요. 강물에 안 떠내려가려면 노를 저여야 합니다. 행복에 이르려면 마음의 노를 계속 저어야 합니다”

다시 집으로 오는 길에 “바람이 불면 바람을 타고 빙빙빙 돌아 올거야∼. 스쳐지나간 지난 일들을 차창가에 날려버리고, 먼길을 돌아∼” 노래 가사를 흥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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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철 2021-04-06 15:34:45
베이스북으로 공유 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