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손흥민이 옳다
상태바
[칼럼] 손흥민이 옳다
  • 포천일보
  • 승인 2023.01.15 10: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현철 이동초등학교 교장
김현철 이동초등학교 교장

"한국이 포르투갈을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그렇기에 아쉬운 것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진심으로 기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가나를 이기고도 한국에 밀려 탈락한 우루과이의 국가대표이자 토트넘의 미드필더로 손흥민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벤탄쿠르 선수가 경기 후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쏘니가 이번 승리로 인해 마음의 짐을 어느 정도 덜은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는 항상 그래왔습니다. 팀이 승리하지 못하면 그것은 대부분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죠. 실제든 실제가 아니든 말이에요. 사실 유럽에선 보기 힘든 마인드입니다. 우리는 항상 패배의 원인을 웬만하면 다른 곳에서 찾거든요. 물론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는 항상 자신이 좋은 플레이를 선보였어도 팀이 진다면, '자신이 좀 더 잘했어야'라는 생각을 가진 친구입니다.”

리더십과 조직문화를 공부하는 내가 손흥민 선수를 정말 좋아하고, 강의 때마다 손흥민 선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저 공을 잘 차는 선수여서가 아니다. 그는 모두가 그의 성공을 염원하게 만드는 최고의 리더이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위대한 성취를 이룬 리더들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남들보다 똑똑하거나, 어느 분야에 뛰어나거나, 혹은 열정과 헌신을 다했다거나 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그건 실무자의 성공비결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리더의 성공비결로는 부족하다. 그걸로 작은 일은 해낼 수 있어도 큰일은 해내기는 어렵다.

작은 일 정도나 해낼 수 있는 그릇이 작은 이들은 타인의 성공과 성취를 위한 기회를 뺏는 줄도 모르고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착각하거나, 자신의 능력과 성과에 자만해서 더 큰 성취로 나아가지 못한다. 함께하는 이들이 저마다 다양한 목소리를 내도록 지지하고 이를 화합시켜 큰 성취를 이루어내지 못한다. 자신의 권력에 취해 자기 취향에 맞는 목소리만 내도록 압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조직을 분열시키고 모두를 위한 조화를 이루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앞길을 방해하는 적을 만들기 쉽다. 그래서 더욱 자기 취향에 맞는 부류에게만 의존한다. 이들이 비록 선한 의도와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어도 결국엔 실패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인류 역사 속의 위대한 리더들은 자신의 성공을 염원하는 사람들을 얻는 능력이 탁월했다. 심지어 그들 주변에는 그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마저도 불사했던 이들마저 많았다. 그들은 누구든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손흥민 선수가 오로지 실력만으로 EPL의 득점왕이 될 수 있었을까? 그가 득점왕이 될 수 있느냐의 여부가 달려있었던 지난 시즌 EPL 마지막 경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득점 선두 살라 선수에게 한 골이 뒤진 채로 경기를 맞았다. 그의 각별한 각오에도 불구하고 후반전 중반에 이르도록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었다. 64 분 경, 그의 동료 클루셉스키 선수는 상대편 골키퍼까지 제치고 드디어 세계 최고의 리그인 EPL에서 독점을 기록할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가운데에서 골대를 향해 돌진하는 손흥민 선수를 본 그는 빈 골대에 골을 밀어넣는 대신에 손흥민 선수에게의 패스를 택했다. 불행히도 마음이 너무 앞섰던지 패스는 부정확했고 그는 발이 꼬여 넘어졌다. 손흥민 선수를 돕겠다는 그의 순수함과 선의가 느껴져서 이게 더 감동적이었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 상황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손흥민 선수를 보고는 슈팅을 못하겠더라. 손흥민 선수가 특점왕이 되어서 기쁘다.”

손흥민 선수를 도우려 했던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한국국가대표와 토트넘과의 친선경기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손흥민 선수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경기가 후반전 중반까지 이르도록 골을 못 넣어서 내심 초조했는데, 선수 교체로 들어오는 선수마다 자신에게 달려와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걱정 마, 너를 득점왕으로 만들어 줄께.” 벤탄쿠르 선수는 자신의 조국이 16강에 오르지 못하고 탈락했음에도 팀 동료 쏘니가 마음의 짐을 덜게 되어서 “진심으로 기쁘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그런 사람이다.

벤탄쿠르 선수의 자성처럼 우리는 타인과의 갈등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남을 탓하기에 바쁘다. 이런저런 압력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만 할 때에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대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곤 한다. 늘 나쁜 결론으로 향하는 레토릭도 서슴없이 구사한다. “어디 나만 잘해서 되겠어? 그러니까 너도 잘했어야지”, “미안해. 그런데 네가 잘했으면 내가 그랬겠어?” 특히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가 필요한 장면에서는 최악이다. 이런 마음가짐과 이런 언사로 틀어진 관계를 개선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인간의 심리가 작동하는 방식에 비추어 볼 때 그런 일은 결코 있어나지 않는다.

관계의 개선을 위해 내가 영항력을 미칠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다. 그래서 현명한 이는 자신의 잘못이 단 1%에 불과해도 오직 그것에 집중한다. 자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 즉 상황 개선을 위한 변수는 그것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갈등 상황에서 날카로운 이성으로 무장한 합리적 설득으로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공격을 받으면 인간 모두가 가진 방어기제는 비합리적 갑옷을 한 겹 더 입을 뿐이다. 인간이 그런 존재인 걸 어떡하랴? 우리 조상들이 수양하는 일에서 외부의 온갖 조건을 다 미뤄두고 오직 자기에게 그리도 침잠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타인과 세상을 바꾸기 위한 필요조건이 먼저 자신을 바꾸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영국에서 ‘왜 많은 사람들이 저 멀리 아시아 끝에서 온 손흥민 선수의 성취를 응원하는가’를 찬찬히 읽어내 보자. 이 보물 같은 선수는 탁월한 실력으로 우리 마음에 자긍심과 위안을 줄 뿐만 아니라,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을 통해 '관계 속의 존재인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아내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웅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태도를 갖는 것이 어렵거나 상당한 인내와 노력 후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미 갖추고 있는 미덕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 가치를 알지 못하고 마음 한쪽에 던져두었기에 할 일이라곤 그저 꺼내어 쓰면 되는 그런 미덕 말이다.

“손웅정 감독님, 당신이 틀렸습니다. 손흥민 선수는 인성과 실력에서 모두 월드 클라스가 맞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그 틀린(!) 생각이 오늘날의 손흥민을 만든 건 아닐지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