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눈 쌓인 왕방산 임도에서 “지팡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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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눈 쌓인 왕방산 임도에서 “지팡이에 대하여”
  • 포천일보
  • 승인 2023.01.2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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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은 어느덧 임도 중간쯤에 와 있다. 눈이 덮힌 임도를 걷는데, 힘을 보태준 지팡이가 그만 쑥 들어가 버린다.

눈 쌓인 임도 바닥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누운 김에 하늘을 바라보며 한 모금 담배 연기를 뿜어낸다.

새벽 차가운 바람 그리고 눈길에 누워 멍하게 하늘을 바라본다. 멍때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것 같은데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나에게 지팡이가 되어 준 분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많은 이들이 나에게 지팡이게 되어 주었구나”하고 혼자서 궁시렁 궁시렁 그린다.

설 다음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을 나선 시각은 새벽 5시 50분경. 실로 오랜만 일인 것 같다. 왕산사에 들러 약수터 물로 목을 축이고 위쪽 임도로 향한다. 이제부터는 재법 눈 쌓인 길이다. 조금 가파른길을 걷는 동안 지팡이가 큰 힘이 되어 준다.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졌던 지팡이인데, 이렇게 보탬이 될 줄이냐?

날이 채 밝기 전, 하얀 눈길을 따라 걷는 임도는 적막강산이다. 고요함 그 자체다. 이따금 까마귀 소리가 들릴 뿐이다. 임도 쌓인 눈길을 아무 생각없이 걷는다. 임도 옆에 설치된 표시된 번호판 37번을 지나고 또 34번을 지난다. 이젠 깊이울저수지로 향하는 곳이다. 아직 공사중이다. 더 이상 갈 수 없다.

시간은 어느 듯 오전 8시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신발을 털고 지팡이를 다시 짚어 보니, 지팡이가 그만 쑥 들어가 버린다. 아무리 손을 써 봐도 고정이 되질 않는다. 고장이 난 것이다.

“앴따, 모르겠다”하고 눈바닥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길바닥에 누운 김에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하늘을 바라본다.

등을 타고 스며드는 냉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못쓰게 된 지팡이를 생각하니, 평소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여겼고, 또한 당연하다고 치부했던 일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포천살이 30여년 세월, 나에게 지핑이가 되어 준 여러 사람이 떠오른다. 아무런 댓가없이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들, 안부를 확인해 주셨던 분들, 보잘 것 없는 신문기사에도 공감해 주셨던 이들, 수많은 이들이 힘이 되어 준 지팡이와 같은 존재들이다. 수많은 이 분들이 있었기에 삶이 참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나이 60이 다 된 나이에 알게 되다니, 내 자신이 우매하기 짝이 없지 않나 자문도 해 본다.

누운 김에 가수 최백호씨의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도 불러본다. 이젠 아예 휴대폰을 켜 놓고 따라 불러본다. “이제 와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라고 하면서 말이다.

왕방산은 나에게 때로 스승이었고, 때로는 지팡이가 되어 주었다. 30대 초반 포천은 너무 낯설고, 의지할 사람없는 타향이었다. 외롭게 힘들 때마다 왕방산을 찾았으니, 아마도 2천번 쯤은 되는 것 같다. 그러는 동안 왕방산은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날은 밝아지고 해는 중천에 떠오른다. 행복한 새벽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왕산사길, 올 한해 많은 이들의 안녕과 평안함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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