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존중받고 싶거든 먼저 존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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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존중받고 싶거든 먼저 존중하라
  • 포천일보
  • 승인 2023.04.0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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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포천문화원 부원장
김현철|포천문화원 부원장

인간은 관계 속의 존재다. 자신의 가치나 의미가 객관적 데이터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규정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인간의 욕구에 관한 담론에서 늘 호출되는 것이 인본주의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라는 위계적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인간은 우선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는 것이다.

잊을만하면 사건 사고 뉴스에서 들려오는 전형적인 수사(修辭)가 있다. “내가 누군 줄 알아?” 이 말은 인간이 얼마나 존중받고 싶어하는 존재인지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혀를 차곤 하지만, 누군들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그래서 학창 시절부터 반장, 회장 선거에 출마하고, 직장인이 되면 승진을 꿈꾼다. 사회에서도 각종 단체의 임원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 일에 시간, 돈, 그리고 노력을 쏟아야 하고, 때로는 수많은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승진하거나 단체의 임원이 되거나 혹은 나이가 들게 되면 바로 타인들의 존중을 받게 될까? 높은 직위, 직함 혹은 많은 나이에 별책부록처럼 타인의 존중이 저절로 따라올까? 과거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종종 그런 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탈권위 사회에서 그런 일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부모와 자녀의 관계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현대인들은 권위적인 사람을 보면 거의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

따라서 현대 탈권위 사회에서 존중받을 수 있느냐의 관건은 직위나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에 있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면 존중이라는 행위의 결정권이 높은 직위나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사람에게 있다.

즉 리더가 아니라 구성원, 부모가 아니라 자녀, 교사가 아니라 학생, 어른이 아니라 나이 어린 사람에게 존중이라는 행위의 결정권이 있다는 의미다. 이들이 리더, 부모, 교사, 어른을 평가하고 존중할만하다고 판단됐을 때 마치 선물처럼 ‘돌려주는 것’이 바로 존중과 존경이다. ‘돌려주는’이란 말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이 먼저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돌려받을 존중’이 없다는 의미다. 생각해보라. 그 누가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는 사람을 존중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최근 우리 사회에 떠오른 불미스러운 화두 두 가지가 있다. 학교폭력과 갑질이다. 이 두 사태의 공통점은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들 사태가 발생하면 법과 규정, 사안처리 프로토콜을 확인하여 학교폭력이나, 갑질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일에 온 에너지를 쏟는다. 위원회를 열고, 판정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소송을 한다. 그걸로 충분한 걸까?

그렇다면 혹시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를 하고도 학교폭력이나 갑질에 명시적으로 해당하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까?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이들 행위의 위법성을 판별하는 규정은 최소한의 행위만을 규제한다. 따라서 이 규정의 여집합이 모두 바람직한 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 법과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행위라 할지라도 모두 바람직한 것은 아니란 의미이다.

자신의 행위가 법과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가를 살피는 것보다는 더 당당한 삶의 방식, 보다 적극적인 관계 맺음의 방식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자신과 타인 모두의 행복을 위한 적극적인 삶의 방식, 그것은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 존중에서 시작된다. 기억하자. 높은 직위와 많은 나이가 타인의 존중을받을 수 있는 보증수표가 아니다. 타인을 내 생각대로 조종하거나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라이센스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중요한 직위나 많은 나이만큼 공동체를 위해 더 무거운 의무를 감당하겠다는 서약에 가깝다.

모두를 존중하라. 모두에게 존중받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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