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따라 바람타고 흙으로 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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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바람타고 흙으로 돌아가는 길
  • 포천일보
  • 승인 2023.04.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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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식 포천중일고총동문회장
양호식 포천중일고총동문회장

지난 3월 30일은 청산(靑山) 김광우(金光宇) 조각가께서 유명을 달리한 지 2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청산 선생은 한국을 대표하는 조각가로서 평가를 받고 있다. 청산 선생은 1941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에서 출생하여 창수초, 포천중, 포천일고를 거쳐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였다. 포천에서 독학으로 조각을 공부하여 홍대 미대를 진학하는 것은 그 당시 기적 같은 일이었다.

청산 선생이 조각가의 꿈을 얻은 것은 자연이 준 선물이었다. 생가 근처에 금수정이 놓여 있고, 그 앞에 영평천이 흐르고 있다. 금수정에는 조선시대 명사들이 모여 시문을 짓고 풍류를 즐긴 곳이다. 봉래 양사언 선생, 사암 박순선생, 강산 이서구 선생 등이 금수정을 찾던 분들이었다. 금수정 앞에 흐르는 영평천에는 기암괴석이 예술품처럼 즐비하게 널려 있다, 청산 선생은 봉래 선생이 바위에 쓴 금수정(金水亭), 경도(瓊島), 동천(洞天) 등의 글씨를 보고서 조각가의 꿈을 갖게 되었다.

청산 선생은 인간과 자연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과 대립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접목, 화해를 작품에 담았다. 수많은 개인전, 단채전, 초대전을 하였지만, 뉴욕 허드슨강의 부유물체를 수집하고 이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뉴욕 허드슨 리버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이 세계적 명성을 얻는 계기기 되었다.

선생의 작품 세계에서 읽을 수 있는 정신은 자유와 평화다. 어떤 틀이나 형식에 구속되지 않고 경계와 고정관념을 초월한 정신세계는 자유 그 자체였다. 선생의 자유는 경계를 허물고 타자와 합일하는 수단이었다. 또한 통찰력과 결합하여 신세계를 열어 보이는 문이었다. 선생의 자유로움은 순수하고 맑고 밝은 심성에서 분출하는 것이라서 타자와 공감을 이룰 수 있었다. 자유를 통해 무애(無礙)의 경지에 이르곤 하였다.
선생의 생가는 38선 경계에 위치하고 있었다. 유년시절에 남북분단의 현실을 최일선에서 겪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쟁이 가져온 폭력과 만행을 목격하였다. 이런 가슴 아픈 체험을 통하여 평화는 선생의 작품세계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선생은 모든 것이 공존, 공생하고 접목하여 합일하는 것을 염원하였다. 선생이 대포의 총구를 꺾어 만든 작품은 평화에 대한 갈망을 표현한 것이었다. 선생은 생가 마을을 평화마을이라 명명하고 조각상을 세운 것은 평화의 가치를 구현한 것이었다. 선생의 평화에 대한 구상은 전쟁을 반대하는 소극적이 자세에 그치지 않고, 대립적이고 이질적인 요소들이 하모니를 이루는 공존, 공생으로 구현하는 것이었다. 평화는 카오스를 넘어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평화의 이념을 교육하기 위하여 노벨평화공원을 구상하였으나 미완으로 남아 있다.
선생의 정신세계의 극치는 사랑이었다. 작품을 만드시는 과정이 사랑의 표현이었다. 선생의 사랑은 선생을 거장으로 이끈 동력이었다. 선생은 지적 호기심을 많이 가지고, 이를 작품에 구현하기 위하여 몰입하고, 노력을 반복하여 완성품을 만들어내었다. 선생은 사랑을 작품세계에 담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대상과의 합일을 이루는 방법으로 삼았다. 대립과 갈등을 넘어 다양성과 포용을 수단으로 대상과 하나 되고 공존하는 것을 사랑으로 역설하였다. 선생의 일생은 큰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작품에 구현한 과정이었다.

선생은 2020년경부터 몸이 점점 소진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작품에 대한 열정은 놓지 않고 ‘물길 따라 바람타고 흙으로 가는 길’을 주제로 전시회를 준비하였다. 마지막 전시회가 될 것을 예감한 듯 사람이 흙으로 돌아갈 운명이라는 것을 담으려고 하였다. 결국 ‘물길 따라 바람타고 흙으로 가는 길’전시회는 유작전이 되고 말았다.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의 품에 안기었다.

청산 선생은 예술세계를 철학의 경지로 올려놓았다. 조작가라는 예술인을 넘어서 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인간의 근원적인 주제인 자연, 자유, 평화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선명한 각인을 남겨놓았다. 청산 선생의 삶 그 자체가 바로 인문이었다. 품격 있는 인문도시를 지향하는 포천시에서 김광우미술관을 조성하는 것은 꼭 실행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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