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단테, 안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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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안단테, 안단테……
  • 포천일보
  • 승인 2023.05.0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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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포천문화원 부원장
김현철 포천문화원 부원장

느린 템포의 진양조에서 시작해서 점점 빨라져 중모리, 자진모리를 거쳐 결국엔 휘몰이처럼 빠른 장단으로 끝나는 산조(散調)같은 국악과 달리 바로크 이후의 서양음악,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클래식이라 호칭하는 음악은 ‘일반적으로’ 알레그로-안단테-알레그로의 형식을 갖고 있다.

빠른 악장으로 시작해서 중간에 느려졌다가 빠른 악장으로 마무리된다. 클래식 문외한에게도 익숙한 베토벤의 교향곡을 떠올려보자. 5번 c단조 <운명>의 1악장이나 9번 d단조 <합창>의 마지막 악장쯤은 기억나거나 흥얼거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빠르고 강렬한, 그래서 깊은 인상을 주는 첫 악장이나 마지막 악장을 기억하겠지만 음악의 깊은 아름다움은 느린 악장에서 두드러지고 빠른 악장을 더 빛나게 해준다. 더 중요한 것은 느린 악장이 있어서 악곡 전체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삶은 빠름과 느림이 균형을 이루고 있을까? 우리 삶의 템포는 지속적으로 빨라져 왔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라고 한다. 구한말 이후의 근현대사의 역동성을 살펴보면 우리 삶의 템포가 계속 빨라져 온 것은 당연한 귀결처럼 여겨진다.

그 결과 우리 사회 시스템의 빠른 속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UN이 발표하는 전자정부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2010년 이후 줄곧 1~3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업무처리 속도는 세계에서 제일 빠르고(외국 공무원의 업무 처리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우리 공무원들은 유능하기까지 하다), 우리나라 택배회사들의 배송 속도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어디 그뿐이랴. 아침의 출근길, 점심의 식사, 오후의 병원 진료 등 우리 삶의 속도는 빠르기 이를 데 없다.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에서조차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빠름 지향’의 사회가 되었다. 공공 부문, 기업, NGO, 그리고 개인적인 영역을 가리지 않고 무엇인가를 해내려면 ‘빠르고 신속하게’는 당연한 슬로건이 되었다.

그런데 그 빨라진 속도만큼 우리의 삶을 행복해졌을까? 빠름을 미덕으로 알고 자신과 타인에게 ‘빨리빨리’ 해내라고 재촉하며 살아오면서 말이다. 우리가 빠름의 ‘단맛’에 중독되어 살아오는 동안 나와 너에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내가 뿌린 씨앗이 돌고 돌아 결국은 내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지금 내 주변에 여유를 갖고 나를 기다려주는 이들이 남아있기는 할까?

이제 잠깐 멈추고 나와 우리의 삶을 돌아볼 시점이 되지 않았을까? 언제까지 ‘빨리빨리’를 추구하며 살아갈 것인가? 이미 우리의 몸과 마음이 세상의 빠른 템포를 견뎌내지 못하고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지 않을까? 혹시라도 ‘과열’의 기미가 보인다면 생존을 위해서라도 ‘일단 멈춤’은 꼭 필요한 시점이다. 현상학자들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자신의 ‘판단을 중지하고’ 주변을 둘러보기만 해도 바로 눈치챌 수 있다.

모두가 ‘빨리빨리’를 외치쳐 살아오는 동안 상처받은 영혼(이들은 나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다, 마트에서, 카페에서, 그리고 일상의 길거리에서……)은 늘어나고 우리 사회는 여기 저기 온전치 못한 몸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혹시 자신의 몸과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관계 속의 존재이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지나치게 빠른 삶의 속도가 내 몸과 마음에 불러온 부작용에서 회복되기 위해서라도 타인에게 계속해서 빠름을 재촉하는 태도는 멈춰야 한다.

중장년층이라면 많은 이들이 눈치챘겠지만 ‘안단테, 안단테’는 7,80년대 세계인의 귀를 즐겁게 해줬던 스웨덴의 4인조 그룹 ABBA의 노래 제목이다. ‘천천히, 천천히’ 쯤으로 해석되도 될 것 같다.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Take it easy with me, please(나와 함께 편해지세요, 부디).”

우리는 언젠간 소멸될 필연적인 운명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걸 모르는 것처럼 딴청 피우며 살아간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거친’ 마음을 타인에게 마구 휘두르곤 한다. 아무런 타인도 없는 삶을 생각해 보면 그 타인은 내 삶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걸쯤은 금방 알 수 있다. 그 고마운 타인에게 ‘빨리빨리’를 외치는 대신 ‘천천히, 천천히’라고 말해주자. 너와 나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함께 존재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도 전해주면 어떨까?

턴테이블에 올려놓은 LP의 지직거림과 함께 ABBA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삶이 힘들거든) 나와 함께 편해지세요,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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