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이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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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이 병이다?
  • 포천일보
  • 승인 2023.05.2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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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포천문화원 부원장
김현철|포천문화원 부원장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도 있고,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말도 있다. 어느 쪽이 맞을까?

뻔한 대답은 ‘때로는 힘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병이 되기도 한다’일 것이다. 어쩌면 아는 것은 ‘힘이 되는 길’과 ‘병이 되는 길’의 분기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 미처 인식할 수조차 없는 어떤 요인들이 우리를 한쪽 길로 몰아넣는 것은 아닐까? 심지어는 아는 것이 힘이 된 건지 병이 된 건지 판단하기 힘든 일마저 일어난다.

자신이 아는 것이 병이 되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아는 것이 힘이 되기를 기대하고 또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저가항공사(LLC)의 효시(嚆矢)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창사 이후 최장 기간 흑자를 낸 것으로 유명하다. 1971년 보잉 737기 3대로 항공 시장에 진입하자마자 기존 항공사들의 집중적인 견제와 소송으로 인해 이 중 한 대를 팔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문제는 남은 2대의 비행기로 3대가 운항하던 노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해결책은 운항을 마친 비행기를 10분 안에 돌려서 다시 운항에 투입하는 것 뿐이었다(통상 민항기 회전에 필요한 최소 시간은 40분이라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10분 회전을 해내고 파산의 위기를 극복한다. 나중에 운항 담당 이사 라든은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 중 상당수는 항공 업계 배경이 없었기 때문에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너츠, 사우스웨스트 효과를 기억하라』에서)

1983년 네게브 사막 상공에서 훈련 중이던 이스라엘 공군의 전투기 F-15는 훈련파트너였던 A-4N 스카이호크와 공중 충돌하여 제어 능력을 잃고 빙글빙글 회전하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조종사 지브 네디비와 그의 동료는 위기상황에서도 비상탈출 대신 비행기 통제를 선택하여 가까스로 활주로에 착륙한 후 믿지 못할 광경을 목격한다. 충돌사고로 전투기의 한쪽 날개가 떨어져 나갔던 것이다. 이들은 ‘직접 보지 못했으니 망정이지 날개 한쪽이 없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바로 탈출했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유용원의 군사세계」에서).

이 두 가지 에피소드 오늘의 물음에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경험이 쌓일수록 반복해서 처리해야 하는 일상적인 일에 관한 지식과 기술이 늘어난다. 같은 일이라도 더 정확하게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자신감도 늘어나고 자부심도 갖게 된다. 그런데 자신감과 자부심이 지나치면 자칫 교만의 길로 들어서기 쉽다.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아는 것’에 대한 태도를 과잉 적용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아는 것’이 ‘힘’이 되는 지점을 놓치고 ‘병’이 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은 아닐지? 특히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서 ‘아는 것’과 ‘교만’이 만나면 바로 ‘중병’이 된다.

아는 것은 양날의 검과 비슷하다. 잘 쓰면 이기가 될 수 있지만 잘못 휘두르면 자신을 해칠 수도 있다. 아는 것이 힘이 되도록 하는 비결은 유연성이다. 사실 유연성은 누구나 갖고 있었던 것이다. 삶의 경험을 통해 축적해온 ‘아는 것’이 힘이 되지 못하고 노폐물처럼 쌓여 유연성의 혈관에 경화(硬化)를 일으키는 것이다. 범인은 “~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당위적(當爲的) 사고다. “그래도 그렇지. 적어도 ~는 ~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 유연성이 경화되지 않았는지 살펴보자. 이 중요한 성찰의 기회를 잡을 수만 있다면 생각은 유연성을 회복하고 ‘아는 것이 힘이 되는’ 길이 활짝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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