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흑산도 역사기행] 유배자 절망의 땅이 이젠 최고의 관광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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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흑산도 역사기행] 유배자 절망의 땅이 이젠 최고의 관광 명소
  • 포천일보
  • 승인 2024.05.0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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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면암 최익현 유허비 앞에서

 

쌍고동 소리(코골이)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떴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잠들지 못하고 숙소에서 나왔다.

어둠이 짙게 깔린 흑산도 선착장에는 어제 타고 왔던 배가 적막한 시각임을 알려준다. 하늘에는 둥근달이 고요한 세상을 비추고 있다. 제법 찬 바닷 바람이 얼굴을 스치운다.

잠시 부둣가에서 면암 최익현 선생이 흑산도에서 보낸 첫날 밤은 어떠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1876년 1월 엄동철한 이곳에 유배형을 받고 도착한 선생도 아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부둣가에 나와 북녘 하늘 새벽달을 봤을 것이다. 일제에 침탈당하는 조국을 생각하며 온갖 상념에 젖었을 면암을 생각해 봤다.

면암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역사탐방 흑산도/홍도 1박 2일 여행은 면암숭모사업회가 마련했다.

4월 26일 금요일 밤 12시 포천종합운동장에는 47명이 모였다. 늦은 시각임에도 관광차에 오르는 이들의 얼굴엔 설래임이 가득 차 있다. 머나먼 홍도와 흑산도 비경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필자는 면암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청양 모덕사, 제주도 유배길, 의병 전쟁 순창, 대마도를 다녀온 후 흑산도를 꼭 방문하고 싶었다.

#해질녘 섬 전체가 붉어지는 섬 홍도(紅島)

 

27일 오전 0시에 출발한 버스는 6시가 채 안 돼 목포항만 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홍도/흑산도로 향하는 개찰구 앞에 늘어선 수많은 관광객 인파는 관광 시즌임을 알려준다.

오전 7시 50분 관광객을 실은 쾌속선은 흑산도를 거쳐 홍도로 향했다. 홍도와 흑산도의 비경을 마음속에 그리는 관광객 얼굴은 다소 흥분된 모습이다. 9시 30분 흑산도에 도착한 배는 다시 항해를 시작해 10시 40분 홍도에 도착했다. 항해 도중 선내에서만 머물러야 하는 탓에 다소 답답함이 밀려온다. 면암 선생의 삶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미칠 쯤 홍도에 도착했다.

육지에선 볼 수 없는 비경이 펼쳐진다. 1시간여 동안 둘러본 홍도는 섬마을 특유의 층층이 집, 숙소, 식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작은 학교도 보인다.

홍도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2시간 동안 진행된 유람선 투어다. 너무 좋은 날씨와 마이크를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해설사 아저씨의 맛 갈진 입담은 웃음을 자아내고, 잠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목포에서 115km, 흑산도에서는 22km 덜어진 홍도는 해가 질때 섬 전체가 붉게 물든다 해서 붉은 홍에 섬도를 더해 이름이다. 신안군의 다도해해상국림공원의 대표적인 경승지로 손꼽힌다. 규암과 사암으로 이루어진 섬의 비경은 홍도 33경에 선명하게 나타난다. 합장한 승려의 모습인 도승바위, 홍도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문 바위, 병풍을 약간 기대어 높은 모양의 병풍바위, 탕건바위, 칼바위, 제비바위 등은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이국적이다. 기둥바위와 시루덕 바위, 주전자 바위, 원숭이 바위, 독립문 바위 등도 빼 놓을 수 없다.

관광객에게 최고의 백미는 아마도 선상에서 즐기는 싱싱한 물고기 회 맛이다. 광어, 우럭, 노래미, 볼락 할 것 없이 잡히는 대로 바로 썰어 모듬회로 판매한다. 유람선에서 소주 한 잔과 함께 먹는 싱싱한 회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절망의 땅 흑산도에서 면암 최익현의 삶은 어떠했을까?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는 노래 가사를 떠올리며, 홍도를 떠나 혹산도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경이다.

항구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산중 오지를 유람을 시작한다. 흑산도 여행 방법은 유람선과 일주도로인데, 우리는 버스를 타고 유람을 시작했다. 버스 기사님은 운전만 하는 게 아니라 차창 넘어로 보이는 전망대와 등대, 흑산도 해변 마을을 상세히 설명해 준다.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세워진 전망대에선 장관인 일몰을 바라보며, 가수 이미자의 노래를 들었다.

흑산면 사리마을에 건립된 유배문화공원으로 향했다. 흑산도는 그 옛날 유배자들의 ‘절망의 땅’이라 여겨 바닷물도 푸르다 못해 검게 변한 섬이라는 말이 있다.

찬송가가 흘러나오는 옛 성당 아래에는 유배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면암 최익현을 비롯해 정약전 등 37명의 흑산도 유배인 도표에서 유배인의 생몰연대와 간략한 소개의 글이 새겨져 있다.

뭔가 아이러니하다. 정약전 유배 비석에는 ‘이승훈 등 남인계 인사들과 접하고 서양의 역수학에 관심을 가졌고, 천주교를 신봉하였다. 1881년(순조1) 신유사옥이 일어나 다른 천주교 신도들과 함께 화를 입어 신지도를 거쳐 흑산도로 유배되었다’라고 적혀 있다. 면암 비석에는 ‘명성황후 척족정권이 일본과의 통상을 논의하자 5조(條)로 된 격렬한 척사소(斥邪疏)를 올려 조약체결의 불가함을 역설하다가 흑산도에 위리안치 되었다’고 소개되어 있다.

 

 

천주교를 박해했던 당사자는 당시 존왕양이를 신봉했던 조선말 유학자들이다. 면암은 존왕양이의 유학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75년의 차이를 두고 정약전과 면암 최익현은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유배문화공원 바로 아래에는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작은 골목길을 따라 붉은색 지붕의 민가들이 줄지어 있다.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지만, 지금은 대다수가 빈집이다. 젊은이들은 모두 외지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았다고 사리마을 어귀에서 만난 한 할머니가 전해준다. 흑산도 역시 노인들만 남은 인구소멸 위기를 피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할머니에게 면암 최익현이 흑산도에 유배 온 사실을 아냐고 묻자 “모른다. 정약전은 알고 있다”고 말한다.

#글자와 비석으로만 남은 면암의 흔적

 

버스는 산비탈을 지나 천촌마을 초입에 자리한 지장암에 도착했다. 지장암 앞에는 1924년에 최익현의 제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유허비 세워져 있다. 바로 뒤편 바위 의두암(義頭岩)에는 면암에 새겼다고 전해지는 기봉강산(箕封江山 기자가 봉한 강산) 홍무일월(洪武日月 홍무의 문명)이란 글자가 아직도 선명하다. 일제 침탈에 맞서 싸우던 면암의 외침 소리가 들리는 듯 싶다.

1876년(고종13) 1월 22일 화친하자는 제의를 물리치는 척화(斥和) 상소를 올렸다가 가거도로 유배를 왔다가 흉년이 들어 잠시 흑산도에 온 면암은 이곳에 계속 머무르게 됐다. 작은 초가집을 짓고, 일신당이라는 서당을 열어 3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 후 면암은 유배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포천으로 돌아왔다.

하루 밤을 보낸 후 흑산도의 이른 새벽은 고요하기만 하다. 면암은 150여년 전 겨울, 새벽 하늘을 바라봤을 것이다. 유배를 왔다는 육신의 고달픔보다는 조국이 열강에 침탈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의 마음은 쑤시고 아팠을 것이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신조를 바꾸지 않았던 면암의 목소리가 귀가에 들리는 것만 같다. 이런 면암의 메시지는 역사문화탐방에 나선 47명의 포천인에게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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