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 시대 포천의 6.29 선언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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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 시대 포천의 6.29 선언을 기다리며
  • 소설가 김종보
  • 승인 2016.08.1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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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배반+배신 = 증오를 잉태하는 원리, 시민의 소리+정의 = 영웅 탄생의 진리임을 알아야”
▲ 소설가 김종보

어느 날 뙤약볕으로 일을 나갔던 청지기들이 돌아오지 않자 주인이 또 다른 머슴에게 동태를 살펴보라 일렀다. 이후 돌아온 머슴이 사실을 고하자 무슨 영문인지 주인이 노발대발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한가한 그늘 밑에서 낮잠을 잔 것도 아니었다. 사연인즉, 지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주인을 모욕하는 험담을 늘어놓아 주인 가족들의 와해를 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몄던 것이었다.

결국, 자신들의 뜻을 주인이 따라주지 앉자 반란을 일으켜 주인의 명예를 떨어트리고자 한 것이다. 지금 그 주인의 위치가 역으로 시민이라는 이름만 다를 뿐, 이와 닮은꼴의 작태가 포천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석탄발전소 건립에 따른 찬 반 여론이 갈수록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그 마찰의 연무가 시민들의 가슴만 태워 숯검댕이로 만들어 놓고 있어 갈등이 끊일 날이 없는 것이다.

실망감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청지기 즉, 정치권 지도자들의 권력남용에 따른 ‘무소불위’(無所不爲)적 야합으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사태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포천은 ‘동서남북’ 으로 온갖 난개발로 인한 도시가 황폐화 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 지난 번 양자간 ‘이율배반’을 통해 자유를 망각하여 훗날 역사는 물론,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써야 한다고 일러 둔 바 있었다. 그것은 무의미했으며, 결국, 변방의 봉화대에 시위 촛불이 가면서 '진퇴양난‘에 놓인 정치권과 시민이 첨예한 대립의 칼날이 더 날카로워진 현실을 바라보자니 참담할 뿐이다. 끝내 ‘유언비어’이기를 바랐다. 이쯤이면 대세가 대세인 만큼, 시민의, 시민에,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특단의 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포천의 주인이며 이 땅을 지켜내고자 하는 제방들이 무너지는 현실을 두고도 정치권 지도자들은 무언가 답을 내 놓아야 할 때다. 그러지 않기를 믿고 싶었는데, 권력을 휘둘러가며 단단한 결속으로 맺어진 철옹성 같은 장벽을 쌓아 놓고 시민과 대처해가며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키는 오늘의 사태를 어찌 할 것인가. 자칫, 문제의 지도자들 때문에 애꿎은 시민들이 또 다른 이 땅의 ‘블랙시트’ (blacksheet) 를 탄생시켜 새로운 시민 이탈현상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저, 능지의 강 뚝 에 모여 분노에 타 오르는 처참한 증오의 불꽃을 그 누가 잠재워 줄 것인가! 저, 메마른 가나안 땅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거둬 내고,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민심의 가슴에 그 누가 촉촉한 단비를 내려 줄 것인가! 저, 정의의 가뭄으로 타 들어가는 대지의 물도랑마다 시원한 생명의 물줄기를 흘려 넣어, 다시금 젖과 꿀이 흐르는 살맛나는 진정한 ‘마홀’ ‘율도국’을 세울 수 있는 영웅은 지금쯤 그 어디에 있는가! 가정이 튼튼해야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 지듯, 지방자치가 건강해야 국가가 건재 하는 것이다.

차제에 정치권은 지방자치의 누수가 결국 국가제방을 흔들어 놓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지극히 객관적이고도 상식적인 문제가 아닌가. 이 시대 환경오염 중 하나인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소 건립이 분명, 시대를 역행하는 일임에도, 정치권들은 무엇 때문에 이 사업을 진행하려하는 것인가. 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논리를 앞세운 야합을 통해 증오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시민의 ‘불협화음’을 조장하여 상생의 원리마저 파괴하는 행위는, 천혜환경을 지닌 포천의 자화상을 송두리째 짓밟는 행위다. 자칫, 오늘에 타 오르는 저 분노의 촛불이 훗날 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증오의 ‘부메랑’이 되어 날아가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거룩한 민주주의의 영혼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지금 ‘백로주’에서 노닐던 백로들의 눈빛마저 예리한 독수리의 눈으로 변해 지켜보고 있다. 그 독수리의 눈빛이 바로 시민의 눈빛이다.

지금까지 시커멓게 타들어가다 넘어져 존엄한 시민의 가치를 상실한 16만기 증오의 무덤들을 어떻게 다 위로해 줄 것인가. 당사자들은 이쯤에서 생각을 전향하여 진정한 ‘대의명분’으로 석탄발전소 건립을 전면 백지화 하겠다는 포천의 민주주의 6.29 선언을 해 줄만한 우리의 영웅 ‘포청천’이 될 수 없는가! 그 영웅이 나타난다면 시민들은 그를 이 시대의 ‘포청천’으로 칭송할 것이며, 이미 정의의 이름으로 준비해 둔 작두를 내어 줄 것이다.

자칫, 오늘의 증오가 훗날 역사의 ‘옹이’로 남겨지지 않기를 바란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시기다. 시민에 대한 ‘이율배반’은 결국 시대와 역사까지 ‘이율배반’을 하는 동시에, 소중한 생명의 존엄마저 짓밟는 행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까닭 없는 이유는 없다. 촛불시위는 결코 목적 없는 반항이 아니었다. ‘이율배반’+배신 = 증오를 잉태하는 원리이며, 시민의 소리+정의 = 영웅을 탄생 시키는 진리이다. 그렇다면 지도자들은 어느 쪽을 택해야 훗날 영광스러운 월계관을 쓸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지도자들의 양심은 언제나 ‘빙점’의 ‘마이너스’ 즉, 현명하고 냉철한 위치에서 평화의 기울기축인 시민 편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로 되돌아갈 때, 그동안 시민들이 들이마신 석탄가루의 분진도 말끔히 씻어 내려 갈 것이다.

지금 청정한 빛깔로 흘러가던 포천천의 강물이 시커먼 탁류가 되어 앞을 가린 현실에서, 그 누가 우리의 영웅이 되어 시커멓게 오염된 시민의 가슴에 생명수를 흘려 넣어 줄 것인가.

타는 목마름에, 지금은 스스로 증오의 무덤을 만들지 말고, 자중을 통한 성찰의 단상으로 나아가 시민을 향해 진실한 고백성사를 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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