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세이]교육자들이 지식인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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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세이]교육자들이 지식인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 이 철 웅 (사)한국인간관계연구소 대표/ 교육학박사
  • 승인 2015.03.18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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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 촘스키의 ‘지식인의 책무’라는 글이 있다.

▲ 이철웅 (사)한국인간관계연구소 대표/ 교육학박사

촘스키는 우리에게 의문을 던져 주었다. 촘스키는 지식인의 책무에 대해 간단하게는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중요한’ 문제를 ‘적합한 대중’에게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진실을 찾아내 알리는 것이라 밝혔다. 그는 위험한 사회에 던지는 위험한 지식인의 이야기를 묘사하면서 핵심적인 것은 지식인들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과 도덕적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가리켜 사회적 정의는 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지식인이 존재할 수 있을 때 건강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사회를 조망해 보자. 이 사회의 지식인들이 과연 바른 정의를 이야기하고 도덕적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말이다. 크게는 청문회에 나온 이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자식들의 교육을 위하여 위장전임을 한 사람이 안 한 사람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며, 우리 사회의 고위층일수록 군 면제 자녀들의 비중이 높다는 사실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촘스키의 고전적 자유주의에서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는 사회이므로 촘스키는 이렇게 인간에 의한 지배가 없는 따뜻한 공동체, 동등한 인격체, 개인적 평등이 있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촘스키는 자신의 추구했던 자유주의자도 팽팽한 긴장과 도덕성을 갖춘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주의자라고 보며 너절한 다국적 기업가들이나 자신의 부를 독점하려는 이들을 비난하고 있다.

이런 논점에서 과연 우리 자신들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소위 지식인으로 지칭되는 교육자들이 과연 지식인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인가와, 이런 지식인들이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고는 있는 것인가 하는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의 가치관 형성 발전 과정을 분노의 단계-인식(실천을 전제로 하는 앎)의 단계-실천의 단계-신념화의 단계-도덕화, 양식화, 인생관화 단계(신념은 곡절이 있으면 꺾이나 이 단계는 그렇지 않음) 5단계로 볼 수 있다. 이런 단계를 거치며 완전한 도덕화의 단계에 다다랐을 때야말로 신념이 꺾이지 않는 실천적 지식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지식을 다루며 지식을 전하는 교육자들이 과연 지식인으로 분류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교육자가 지식인인가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고 현장에서 어떻게 아이들과 주민들과 호흡하고 소통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작금의 세상은 이념이 넘쳐나는 사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이념 논쟁의 한 가운데 교육자가 있음도 인지해야 할 상황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감히 논 하건데 교육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는 내야하겠지만 이념의 부산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우리 교육자들이 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더 나아가서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래도 이 사회에서 조금 더 깬 자들이 이 나라의 교육자가 아닌가? 그러기 때문에 사회 정의적으로 병든 사회를 구원할 자 교육자들이라고 강변하고 싶고 이는 필자의 생각이라기보다는 교육에 관련된 철학 심리학자들의 공통돤 견해라고 본다.

사회는 변혁되어야 하며 이는 점진적인 제약을 가져야 하는 까닭에 이 나라 교육자들의 도덕적 행동과 바른 소리를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우리 지역사회를 보면 이런 교육자적 사명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개인의 영리를 추구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진정으로 제자를 사랑하고 그 주변인인 주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교육에 더 많은 땀을 요구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교육자들, 특히 교육관리자들의 솔선과 자기희생을 기대해 보기도 한다. 사실 우리 지역의 현실에서 교육적 부조화가 있다는 것은 교육관리자들의 지도역량의 문제이며, 우리 지역의 행정적 문제는 우리 지역 지식인들의 자기성찰의 결여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자들이나 지식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이냐를 먼저 분명하게 고민하면 제자들이나 주민들에게 올바른 좌표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겪고 온 것은 지식인들이나 좀 아는 이들이 주민이나 대중의 간절함, 고통에 있어서는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되므로 지식인들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반성해 보기도 한다. 지식인은 자신이 아는 바를 실천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과 같이 우리 지역의 지식인들이 보다 나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데 혼자보다 둘이 더 나은 것처럼 혼자가 아닌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사회는 더 나은 상황으로 달라진다는 공동체적 삶의 모형을 우리 지역에서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촘스키의 원대한 꿈은 인간을 압박하는 권력을 해체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필자는 그의 사상에 더하여 서민들의 작은 어려움을 보살피는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는 우리 지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참 지식인은 실천하는 이들이라고 강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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