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청소년들에게 바른 희망을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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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청소년들에게 바른 희망을 보여주자
  • (사)한국인간관계연구소 대표/ 이 철 웅
  • 승인 2016.11.18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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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웅 (사)한국인간관계연구소 대표

청소년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시대에 따라 혹은 학자에 따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유명한 청년심리학자는 청년기를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로 표현했다. 이는 문자 그대로 걷잡을 수 없는 바람과 성난 파도와 같다는 뜻이니 그 뜻이 가리키는 의미는 자못 엄숙하기도하다. 혹자는 ‘겁 없는 시기’라고 칭하기도 한다.

필자가 평생을 아이들을 가리키는 교직에 몸담았으며 십 수 년을 대학 강당에서 후학들과 씨름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학교밖 청소년들과 비행청소년 상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정상적인 아이들이든지,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라도 그들의 고민은 현실 적응이 어렵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만나보면 학원가기가 너무 싫은데 부모는 강요하고 있어 이를 반항하기가 어려워 소풍 길에 귀가시간을 늦춰 달라는 애절한 어린 눈동자의 주인공을 나는 잊을 수가 없으며,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잘 알지도 못하여 죄의식이 전혀 없는 중학생을 수사기관의 상담실에서 접했을 때는 화가 나기도 했고,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잘못하여 상담을 받는 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이 모든 여건이 청소년 당사자가 조성한 것은 절대 아니다. 이 시대의 성인들의 집권 구조가 만들어 논 밥상인 것이다. 시대적으로 혼돈을 초래하여 공부하는 성실한 청소년들의 꿈을 뭉개버린 이들도 청소년 자신이 아니라 잘 나가는 이 나라 집권세력들이 아닌가?

이 시대의 우리 청소년들은 어쩌란 말인가? 특히 포천이나 경원축에 있는 이른바 수도권 외각 지역의 청소년들의 주변 환경은 더 심각하다. 문화를 느낄 공간도 없는데 소위 교육정책권자들은 그들의 입맛에 맞게 정책을 조율하고 있지는 아닌지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대학을 가는 것은 공개시험과 내신 밖에 참고 자료가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수능이라는 시험의 결과에 따라 대학 진학의 결정되는 구조이다. 학원에 가고 싶어도 가까운 주변에는 이들의 욕구를 채워줄 질 높은 사설교육기관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혼자 공부하고 극복하기에는 기본적 학업 수행 능력이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 스스로 학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청소년들의 비중은 절대적으로 많다. 이들에게 아이들의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야간 자율학습마져 금하는 것은 아이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진정한 교육지도자는 아니다.

선진국처럼 아이들의 특성에 따라, 그리고 고등학교의 교육방침에 따라 대학선발제도가 정착되어 있지도 못하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에도 미국에서는 시험성적으로 평가했을 때 불이익을 받게 되는 집단이 발생하면 소위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그 선발방법을 다르게 하여 선발한 역사가 있다.

진보주의 교육이 미국사회를 휩쓸 20세기 초반에 교사들의 철학에 의하여 진보주의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대학진학의 상대적 불이익을 받을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진보주의 교육을 받는 고등학생들에게는 다른 루트로 대학을 진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들은 고교 내신만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들은 대학에 입학 후 일반 학생들과의 대학생활 내내 능력을 8년 동안 연구하고 평가한 것이 소위 교육학의 고전인 “8년 연구”인 것이다. 결론은 정상적으로 시험을 보아 입학한 사람이나 특별전형 즉 진보교육을 받아 고교내신으로 입학한 학생들이나 모두 대학학업을 수행하는데 차이가 없었다는 결론을 도출했던 것이다.

이렇게 외국에서는 아이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욕구에 따라 대학교육을 조정하는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청소년기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청소년들이 그들의 장래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데 부모 된 이 나라 지성인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물론 이 나라 청소년들은 공부에 너무 찌들어 있다. 그러나 이것마저 포기하면 그들의 앞날이 너무 불투명한 것이다.

부모의 자녀 양육은 최우선은 관심과 사랑이다. 부모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들은 그 심성부터가 다르다. 어른을 공경할 줄 알고 친구를 배려할 줄도 알며 나의 행동에 따라 상처받을 수 있는 대상물에 대한 마음의 배려도 부모의 사랑 속에서 싹트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이 나라 지도자가 될 때에 그 나라 국민의 행복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정신적, 심리적 환경을 바르게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가 권력을 가졌다고, 그리고 그 권력층에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만 다르게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면 이 나라 청소년들의 꿈을 짓밟는 처사인 것이다.

우리 가정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꿈과 희망을 멜로디인 자녀 사랑에 더 많은 관심을 당부하고, 이 나라 지식인들에게는 우리의 정당하고 바른 심리적 사회적 구도를 조성해 달라는 부탁을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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