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면암의 혼을 찾아가는 길> 포천학생 특별한 제주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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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면암의 혼을 찾아가는 길> 포천학생 특별한 제주탐방
  • 포천일보
  • 승인 2017.11.2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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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북면 주최 도전 골든벨 선발 21명, “면암선생 생각에 힘들지 않아요”

모덕사 인근 면암 교육관 신설예정…면암 사업 못하는 포천시와 크게 대조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평소에는 100m 정도밖에 안 걸어요. 면암 선생께서 이렇게 힘든 길로 제주도에 유배왔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있어요. 힘들긴 하지만 최익현 선생님을 생각하면 괜찮아요”

26일 제주도가 조성한 ‘최익현 선생의 제주도 유배길’을 걷다가 중간에 이곳에 온 한 학생의 말이다. 학생들 모두 힘들어 한다. 그러나 뭔가는 하고 있다는 표정이다. 학생들은 면암 선생을 기리는 유적지를 돌아본 후 유배길 4.5Km를 걷고 있었다. 정실마을에서 민오름까지 온 것 감안하면 10여Km를 걸었다.

신북면이 주관한 ‘면암을 찾아가는 길’-도전 골든벨에서 선발된 21명의 학생들은 25일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 면암 생가터와 청양 모덕사를 거쳐 제주도로 떠났다. 양영근 신북면장과 신북면자치위원회, 면암숭모사업회에서 학생들과 동행했다.

가채리 면암 생가터를 둘러보고 버스에 오른 학생들의 표정은 들뜬 표정이라기 보다 담담해 보인다. 하지만 면암 선생의 정신과 삶을 이야기 하면서 그 당시 어려웠던 생활상과 면암이 어렸을 때 걸어서 충청도까지 이사가는 모습은 어떠했을까? 라는 설명은 할 때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다. 골든벨 행사를 준비하느라 많은 공부를 한 모양이다. 면암 선생에 관한 질문에도 곧잘 대답을 한다.

주말이라 그런지 충남 청양에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버스 전용차로로 달리던 버스가 국도로 진입하자 정체되기 시작한다. 청양에 이르기까지 정체와 지체는 계속됐다.

◇모덕사에서 면암 선생의 큰 인물됨을 알다

점심 시간이 다 되어 청양에 도착한 후 일행은 잠시 국내 최대 규모인 천장호 출렁다리 위를 걸었다. 학생들의 표정이 한껏 밝아 보인다. 호수 물위 270여m에 부교를 설치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었다. 포천시 영북면에 위치한 산정호수를 연상시키는 호수다.

이후 점심식사를 한 후 모덕사로 향했다. 모덕사에 도착하자 청양군 문화해설사가 일행을 반긴다. 포천에서 나왔고 하니 더욱 반기는 모습이다. 문화해설사는 면암 최익현 선생을 조국을 위해 헌신한 최고의 위대한 인물로 그려낸다. 면암의 고향 포천과 크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면암의 생애와 조상 등에서부터 충청도와 전락도 사당 36개소에서 배향된 이야기 등 면암 위대함을 강조한다.

그는 또 청양군이 면암을 모시는 모덕사를 건축하기 된 배경을 설명했다. 23세 때 과거에 급제한 후 첫 발령지가 현재의 청양군 신창읍이라는 것이다. 그 당시 신창군수로 부임한 이후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 후 1895년 명성황후를 일제가 시해하자, 곧바로 사직하고 청양에 내려와 유림들을 모아 항일운동을 하던 곳이라고 자랑스럽게 듯싶게 말했다. 탐방에 참여한 학생들 역시 진진한 표정으로 한 가지라도 더 듣고자 하는 모습이다. 이곳에서 시작된 의병활동은 전북 태인군으로 옮겨지면서 400여명으로 늘어나고 순창전투와 대마도 유배에 관한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설명했다. 면암선생 유품전시관, 면암선생 거처, 사당 등에 관한 이야기를 꼼꼼하게 풀어낸다. 그러면서 청양군에서는 50억원의 예산을 들여 내년쯤 모덕사 바로 옆에 학생교육장을 신축할 예정이라고 한다. 면암의 본향인 신북면이 주최한 학생 도전벨 행사 예산까지 삭감한 포천의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

문화해결사는 또 예산군 광시면에 안치된 면암 묘소를 두고 화를 단단히 낸다. 음습한 곳에 조국의 위대한 분의 묘소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면암 고향이 포천시와 문화관광부 등에 대한 강한 질책이다. 면암 선생의 위대함에 대해선 너무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열정을 쏟아냈다.

◇제주도에서 면암 유배길을 걷다

모덕사를 출발한 일행은 청주공항으로 향했다.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다. 제주도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7시경이다.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9시를 넘긴 시각이다.

26일 면암 최익현 선생 유배길을 찾기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제주도 태생인 나이 지긋한 현춘심 문화해설사가 안내해 주었다. 그녀는 포천동과 자매결연도시인 삼도1동 부녀회장을 역임했다고 한다. 이런 인연을 감안한 듯 최익현 선생뿐만 아니라 제주도에 유배 온 고려와 조선시대 선현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에 의하면 고려말과 조선시대 유배도시였고, 본인은 제주도 유배문화 해설사라고도 했다. 제주도에 유배 온 거물급 관리들이 많았다. 광해군과 송시열, 이익, 김윤식 등 수많은 관리들이 삶의 한 페이지를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이들은 유배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제주도 여인과 제2의 혼인을 하거나 첩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자식을 낳았지만, 본토로 내려가지 않아 제주도에는 그 후손들이 많다. 탐라 00씨라고 하면 거물급 후손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초대 제주도지사 역시 그 후손이라고 한다.

면암 선생이 제주도 유배생활 하던 중 서당을 마련하고 유생들을 교육했다는 말이 빼놓지 않았다. 위정척사사상의 교육을 했던 삼천서당부터 유배생활 모든 것을 들려준다. 면암선생의 첫 유배거처였던 곳은 도시지역으로 변해 표지석만 남아 있다고 한다.

문화해설사는 조선 말기 역사적 격변에 맞서 부딪쳤던 지식인이자 조선의 마지막 선비의 자존심을 보여주었던 최익현 선생 유배길 들려줬다. 연미마을에서부터 정실마을과 민오름 그리고 면암의 영향을 받아 제주도 유림들이 항일 운동의지를 약속했다는 조설대까지 선생의 흔적을 찾아 걸었다. 평소에 걷지 않는 학생들의 힘겨운 모습이 역력하다. 하지만 마음 한 곳에서는 포천출신으로 유배길을 걸었던 면암 선생의 노고를 함께 하는 듯 싶다. 오후 7시 김포행 비행기가 연착되어 포천에 11시30분경에 도착하는 고달픈 일정에서도 학생들은 포천인이라는 자부심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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