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군에 의해 완전히 폐허가 된 몬드라곤 교구에 비교적 젊은 나이에 부임한 신부로 전쟁으로 망가진 이곳을 부흥시키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기술학교를 만들어 이곳 젊은이들이 뭔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의욕을 거의 잃었던 지역 주민들을 위해서는 축구클럽을 만들어 스포츠로 주민들을 계몽하기도 했다. 일종의 복권인 스포츠 복권을 만들어 그 기금으로 마을을 재건하는데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숨은 노력으로 그가 부임하고 15년 후에 이곳에서 앞서 기술한 '울고'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1957년부터 1990년 까지는 협동조합의 성장기라 할 수 있다. ‘울고’가 탄생한 후 1970년 대 까지는 미국을 비롯한 일본, 유럽 전체가 엄청난 경제 고도 성장을 맛보던 시기였다. 스페인의 내수시장은 물론 유럽 시장 전체가 급격히 커지면서 몬드라곤의 협동조합 역시 순탄한 성장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는 대부분의 서방국가들이 그랬듯이 이곳에서도 제조업이 성장의 주된 동력이었다. 세계적으로 수요는 넘쳐났고, 어느 정도의 제품력과 자금력만 있으면 물건을 만들어 내는데 주력하면 되는 시기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몬드라곤의 경우는 세계적인 경기 호황 붐을 타면서 성장하게 되어 나름 운도 따랐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자금력을 확보하기 위해 금고를 설립하게 되는데 1957년 설립된 일명 ‘노동인민금고’가 그것이었다. 지금도 협동조합의 성패를 논할 때 자금력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데 몬드라곤의 이 시도는 후일 전체 협동조합의 성패를 좌우하는 자금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우리나라의 일반 협동조합이 바로 이 금융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치명적인 한계일 수 있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거론하도록 하겠다.
자금력의 확보만이 아니라 조합원인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독자적인 사회보장협동조합도 설립하게 되는데 '라군아로'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조합원들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국가 사회 보장망에서 벗어나 있는 노동자들의 복지를 담당하려는 노력에서 설립된 것이다.
이 협동조합에서는 몬드라곤의 노동자조합원들에게 의료, 산재, 고용, 연금 보험을 망라하는 종합적인 노동자 복지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제공하였다.(다음에 계속)
저작권자 © 포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