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선거는 민주주주의 꽃이고, 민주주의 성숙도를 가름하는 척도가 된다. 선거의 첫걸음이자 핵심은 공천이다.
선거는 공천으로 시작되고 공천이 선거의 성패를 결정짓는다. 공천이 잘 되어야 정당, 공천자, 후보자, 낙천자가 모두 사는 상생의 길이 될 수 있다. 또한 공천이 원만해야 선거가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다.
정당이나 공천자는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을 제시하여 공천을 하고, 후보자는 할 만한 사람, 해도 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낙천자는 결과에 승복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어야 공천이 상생의 길이고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녹녹치 않다. 지난 선거를 되돌아보아도 선거가 공천자의 무덤이 되곤 하였다. 낙천자가 불복하여 탈당을 하거나 조직이 이탈하여 조직이 와해국면을 맞기도 했다. 공천자는 불복의 광풍에 휩싸여 무덤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다. 공천은 공천자 뿐만 아니라 정당에게도 큰 부담이 된다. 공천파동으로 정당이 요동치기도 했고, 당세가 반쪽이 되기도 했다.
공천을 모두가 승복하고 모두가 축제로 여기는 길은 없는지 고민이 된다. 난제에 부딪힐 때는 본질(근본)에 힘쓰면 된다. 근본이 서면 길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논어에서 군자가 근본에 힘써서 근본이 서면 길이 생긴다고 가르치고 있다(君子務本 本立道生). 공천제의 본질을 이해하면 길이 열릴 것이 틀림없다.
공천제에 대하여 후보난립을 방지하고 유권자의 선택을 용이하게 한다는 정치학적 이해 보다 더 깊은 본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천제는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여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하여 유권자 앞에 내놓는 것이다. 세상에 널려 있는 주옥같은 인재를 찾아서 주권자의 선택을 받게 하고, 선택받은 인재가 공직을 맡도록 하는 것이 공천제이다. 그렇다면 공천제의 성공요건으로 사전에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인재육성이라는 투입(input)dl 있어야 성공한 공천이라는 산출(output)이 나오는 것이다. 정당이 인재육성에 힘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지금까지 공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가 인재육성을 게을리한 데 있다.
공천(公薦)이 상생의 길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우선 사천(私薦)이 되지 않아야 한다. 공천자의 개인이익이나 개인감정(호불호)에 의하여 공천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공천의 기준으로 당에 대한 충성도를 이야기하면서 공천자 개인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공천(公薦)은 공정(公正)한 절차와 공개(公開)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편파적이고 편견이 있는 것을 공천이라고 할 수 없다. 밀실야합이나 깜깜이절차를 공천이라고 할 수 없다. 모든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투명하고 공정하고 공개적인 방법으로 공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공천(公薦)은 공적(公的) 기준이 전제되어야 한다. 공천은 수요자인 유권자에게 후보라는 상품을 내놓는 것이므로 유권자의 눈높이와 욕구에 부응하여 공적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유권자조사를 하고, 시정(市政)의 방향과 흐름을 이해하여야 한다. 시가 나갈 방향과 흐름에 적합한 인재를 공천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시정과 시민의 눈높이와의 적합성을 무시하면 공천이라고 할 수 없다.
공천(公薦)은 공적(公的) 책임을 부담하여야 한다. 공천자가 유권자에게 천거를 하는 것으로 공천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직을 맡아서 충의(忠義)를 다하는지 관리감독을 하여야 한다. 공천의 공적 책임은 정치적 책임의 한 부분이여야 한다.
공천(公薦)의 기준으로 제시한 공공성, 공정성, 공개성, 공적 기준과 공적 책임성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공천자가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공천다운 공천을 만들게 한다. 공천자는 오직 유권자의 눈높이와 시대의 요구만을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 공천자가 하심(下心)의 자세로 공천을 하여야 모두가 사는 상생의 길이 될 수 있고, 선거가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