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느 가을날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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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느 가을날의 독백
  • 김병연 시인/수필가
  • 승인 2018.11.0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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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연 시인/수필가

수채화처럼 곱디곱게 물든 아름다운 단풍, 나무 사이로 뿜어내는 가을빛이 숨이 막힐 듯하다. 심호흡을 해본다. 맑은 하늘과 가을 산은 하나님의 섭리이자 우주의 언어이다. 지나간 추억이 일어서며 가슴속에 수많은 그림을 그려낸다.

봄날의 소생과 여름의 성숙은 없지만 가을의 쓸쓸함은 화려함과 공존한다. 은빛 억새, 샛노란 은행잎, 갈색의 낙엽은 여름내 녹아내린 열정이 성숙으로 빚어진 결정체이다. 이 고뇌의 빛깔은 가을만이 그려낼 수 있는 우주의 캔버스이다.

늦가을, 어느 집 담장 안에 감이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려있다. 입새 다 털어내고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감빛이 참으로 곱다. 꽃보다 고운 그것들을 보노라면 가슴 가득 안아보고 싶은 충동에 감나무 아래 서 있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나는 풍성의 상징 감나무를 좋아한다. 감나무에는 일곱 가지 미덕이 있다. 수명이 길고, 그늘이 짙으며, 새가 둥지를 틀지 않고, 벌레가 생기지 않으며, 가을엔 단풍이 아름답고, 열매는 달고, 낙엽은 훌륭한 거름이 된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색깔이 많지만 잘 익은 것, 가을 단풍처럼 불타는 것, 시간 속에서 익을 대로 익은 것의 빛깔은 아름답기보다는 곱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가을 석양은 왜 그리도 빨리 지는지. 고운 단풍의 정취를 만끽할 사이도 없이 소슬바람에 여운을 날리며 황홀경의 절정을 거두어간다. 성미 급한 겨울에게 자리를 넘겨주려는 듯 석별의 손짓을 보내면서 말이다.

단풍을 잡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낙엽이 받아들이는 엄숙한 만추! 해질녘 가을 하늘이 온통 감빛이다.

단풍이 현란한 색상으로 산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봄부터 힘찬 생명력과 향기로운 꽃으로 산을 뒤덮더니 또 다른 모습으로 인간의 넋을 빼 놓는다. 여름은 짙푸른 녹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총애를 받지 않았던가. 하지만 산을 수놓는 단풍을 능가할 수는 없다. 오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화려한 색의 향연은 인간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는다.

나무로서는 단풍이 생명 연장을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것이 인간의 눈에는 오히려 아름답게 보인다. 차가운 겨울을 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속없는 인간이 느긋하게 바라보며 즐긴다. 여기에 사람과 나무의 입장 차이가 있다. 어떤 원리에 의해 단풍이 드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이유 없이 그냥 일어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언제나 자연의 섭리는 삼라만상에게 공평하게 작용한다.

나무는 여름 내내 잎을 무성하게 가꾸다 버려야 할 때가 되면 버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잎은 나무의 한 부분으로 봄부터 가을까지 고락을 같이 했다. 그러나 버려야 할 때가 되면, 잎 없는 나무가 찬바람과 눈보라를 견디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잎을 미련 없이 과감하게 버린다.

나무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생로병사의 현상이 있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상념에 잠긴다. 나 또한 언젠가 저 낙엽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자연의 섭리를 인간이 거역할 수는 없다. 조용히 순응하되 노화를 늦추고 분수를 지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그게 생각대로 될지 모르겠다. 뭇사람의 부러움을 사면서 건강하고 즐겁게 여생을 보낼 수 있어야 될 텐데 말이다.

인생의 계절도 자연의 계절처럼 가을이 풍요롭고 아름다우며 순환한다면 참으로 좋겠다.

낙엽은 자신을 키워준 나무 아래로 떨어져 거름이 된다. 그것은 참으로 값진 보은(報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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