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 익안대군 포천 성북파 종친회는 지난 10월5일 1950년 6.25전쟁으로 소실된 이 명(李 蓂) 효자정문(孝子旌門)을 군내면 상성북리 756번지에 복원하고 준공식을 가졌다.
6.25전쟁 당시 포화(砲火)로 붕괴멸실 되어 현판만 관리하다 종중이 뜻을 모아 70여년만에 효자정문을 복원했다.
이날 준공식에는 이강효 문중 회장과 이종문 포천전교와 이종훈 전 전교, 종원 등이 함께 했다.
효자정문의 주인공인 이 명은 조선 1614년(광해군 6년) 포천 상성북리에서 출생, 1693명(숙종 16년)까지 산 인물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효행이 뛰어나서 향리에 소문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 벼슬길에 올라서도 웃어른 공경은 남달랐다. 부친상을 당하여 묘악(墓幕)을 짓고, 조석(朝夕)으로 곡(哭)을 하며 죄인처럼 지냈다. 어느 날 흰 까치가 날아와 묘막 추녀 끝에 둥지를 틀고 손님이 찾아오면 사람이 온다는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3년 상(喪)을 마치는 날 그가 살고 있던 마을 뒷산으로 날아갔다. 이를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명의 효성이 하늘에 닿았다”고 칭송하였다.
1702년(숙종 28년) 지방을 순시하던 암행어사 박제가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임금에게 상서(上書)하여 이명 작고 9년후에 효자로 정려(旌閭)하여 효자문을 세우고 그의 효행을 기리게 하였다고 한다. 이같은 내용은 견성지(堅城誌)와 포천군지에 기록되어 있고, 지금도 효자 정문에서 유래되었다 하여 샘말에서 범허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정문고개라고 칭한다.
이강효 문중 회장은 “산업화와 생활환경으로 인한 핵가족이 되면서 효 사상이 점점 퇴색되고 있다”며 “효자정문 준공을 계기로 종원과 시민들이 효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