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완의 춘분 새벽 기행] 고려시대 중기 축조 어룡동 석조여래입상을 찾아서
상태바
[하승완의 춘분 새벽 기행] 고려시대 중기 축조 어룡동 석조여래입상을 찾아서
  • 포천일보
  • 승인 2021.03.20 18: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려시대 중기 조성 추정 포천 석조여래입상
고려시대 중기 조성 추정 포천 석조여래입상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봄의 네 번째 절기 춘분 이른 새벽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길을 나섰다.

동녘이 밝아오기 전 왕방사 오르는 길은 어두움에 가려져 있다. 가정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과 가로등 등만이 세상을 비춰 줄 뿐이다. 어두움 때문일까? 하천에 흐르는 물소리가 제법 시원하게 느껴진다.

20여분을 오르다 보니 새벽 운동하시는 분들과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거의 매일 이곳을 오르내리다 보니 이제 아주 가까운 이웃이 된 사이다.

날은 점점 밝아 환해진 아침, 산 이곳 저곳에서 전해지는 봄의 향 내음이 코 끝으로 다가온다. 활착 핀 생강나무 꽃, 이제 막 피어오르는 진달래 꽃이 어디선가 짖어대는 닭 울음소리, 지저기는 종달새 소리가 호병골 아침을 말한다.

20여분을 더 올라 왕산사에 들러 시원한 약수물로 마른 목을 축인다. 아마도 이곳 시원한 물을 20여년 가까이 마셔 본 것 같다. 천년고찰 사찰 왕산사 정기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시원한 물로 목을 축였으니, 발길을 신읍동과 어룡동을 이어주는 임도로 발길을 돌린다. 이곳 임도는 산길이지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편안한 흙길이다. 포천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남녀노소가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빼어난 경치를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선물하는 것만 같다.

 

임도를 2Km 남짓 걷다 보면 어룡동 석조여래입상으로 향하는 등산로에 접어들어 산길을 오른다. 참나무와 소나무 사이에 진달래 꽃이 부끄러운 듯 살짝 핀 모습을 보여준다. 100여m를 더 오르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계곡, 시원한 물줄기가 청량감을 한층 더해 준다.

계곡을 따라 20여분을 더 오르니 석조여래입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이 반기는 듯 싶다. 건축물 내부에는 하나의 바위로 광배와 부처의 몸, 대좌가 이어진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포천 석조여래입상을 설명하는 표지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불상은 석가모니불로 고려시대 중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코 부분이 파손된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불상의 형태, 손 모양, 옷 주름 등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머리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혹 같은 형상이 높이 솟아 있고, 목에는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중생이 걷게 되는 세 가지의 길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세 줄의 주름을 표현했다. 이마와 눈썹 사이에 구슬 모양으로 새겨진 부분은 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빛나는 털을 나타낸 것이며, 부처의 자비가 온 세계에 비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불상의 전체 높이는 2.6m, 광배 너비는 1.2m이다.

돌탑 위에 부처가 앉아 세상을 내려다 보며 욕심을 버려라고 훈계하는 것 같다.
돌탑 위에 부처가 앉아 세상을 내려다 보며 욕심을 버려라고 훈계하는 것 같다.

 

석조여래입상 인근을 살펴보니 돌탑 위에 부처가 앉아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다. 중생들에게 욕심을 버리고 상생하라고 훈계하는 모습이다. 깨진 기와장, 정성들여 쌓아 올린 돌탑, 누군가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에서 석조여래입상을 조각한 석공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 다시 한번 석조여래입상을 바라본다. 파손된 일부 석조물에서 천년 세월의 덧없음이 가슴속 깊이 흐껴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