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지방자치는 시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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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지방자치는 시민의 몫이다
  • 포천일보
  • 승인 2023.04.1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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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장)
한상우(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장)

1948년 제헌헌법은 지방자치를 민주공화국의 기본요소로 보고 그 실시를 규정하였다. 1952년에 첫 지방의원선거가 실시되었으나 1961년 해산되고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되기까지 한국의 지방자치는 30년동안 법 조문 속에 사장(死藏)되었다. 1995년 민선단체장 시대 개막이후 지방자치가 정치 행정과 시민생활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지방자치권이나 시민참여면에서 많은 발전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지방자치를 제대로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지역발전과 시민의 복리증진을 위해서이다. 한 국가의 재정 주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있다. 우리나라는 광역 17개, 기초 226개 총 243개 지방정부가 있다.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시민에게 더 시급한 재정지출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지방정부가 더 많은 재원을, 자주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티부(C. M. Tiebout)라는 학자는 시민들이 본인들의 만족을 최대화할 수 있는 지방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이른 바, '발로 뛰는 투표(voting with one's feet)'를 통해 지방정부의 경쟁력이 강화됨으로써 국가 전체의 재정효율성이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1개 지방정부와 243개 지방정부가 사용하는 재정규모는 60:40 정도이다. 주택, 교통, 환경, 관광, 문화, 복지와 같은 지방사무보다는 국방, 외교, 국토, 교육, 금융 경제 등 국가적 사무에 더 많은 재정이 지출된다는 얘기이다. 국민이 내는 세금의 약 80%는 국세이고 20%는 지방세이다. 자체수입이 적은 지방정부는 가난할 수 밖에 없다. 평균 지방재정자립도 50%정도이다. 지방정부의 살림살이에 사용되는 재원이 규모도 적을 뿐만 아니라 자주성이 취약한 구조이다. 이는 재정자주권의 측면에서는 중앙정부가 표방하는 지방분권화를 충분히 달성했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는 시민의 민주역량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일찍이 영국의 제임스 브라이스(J. Bryce)경은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학교인 동시에 그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제도"라고 설파하였다. 민주주의 지도자와 시민역량은 이론과 제도에 대한 교육만으로는 충분히 성숙되기 어렵다. 정치는 ‘가치의 권위적인 배분’이므로 본질적으로는 투쟁이다. 그러나 그 투쟁의 수단은 대화와 타협, 설득과 협상이며 이는 체험을 통해서 훈련되고 체득되는 기술이다. 이러한 기술은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불리우는 지방자치의 현장에서, 또는 선거과정에서 참여와 경험을 통해서 체득된다. 영국, 미국, 독일 등 선진국가에서 커뮤니티조직이나 다수의 지역시민단체가 활성화 되어 있는 것도 시민의 정치역량 강화의 주역이다.

셋째, 경제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서이다. 선진민주주의 제도라야만이 국민소득 10만불 시대를 견인할 수 있는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복지제도를 양산해 낼 수 있다. 세계 경제 선진국에 정치가 엉망인 나라는 없다. 그 나라들이 예외없이 지방자치를 통해서 민주주의를 완성시켜왔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정치지도자나 시민의 민주 정치역량이 부족한 이유는 그것을 실질적으로 키워낼 수 있는 지방자치의 토양이 충분히 성숙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각 동(洞)에 설치되어 있는 주민자치회이다. 주민자치회는 1999년 IMF이후 행정기구 축소의 방안으로 출발하였다. 인구 5천만명으로 기초지방자치단체 평균인구가 22만명인 우리나라는 외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 평균인구 3~5만에 비하면 자치가 형식화 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주민자치센터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탄생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0년 이후 주민자치회는 충분한 재정지원이나 권한도 없이 10% 남짓의 소극적인 주민참여로 운영되고 있으며 소중한 자치의 터전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위한 권한과 재정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요컨대, 지역발전과 복리증진을 견인하고 대한민국이 경제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성숙한 민주주의가 확립되어야 한다. 성숙한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해서는 지방자치를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러나 결코 지방자치권의 보장이나 재원배분이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것은 주민의 끊임없는 요구와 쟁취로서 얻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외국 속담처럼 ‘쇠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부분의 강도를 넘을 수 없다.’ 무관심하고 나약한 시민에게 제대로 된 지방자치는 주어지지 않는다. 지방자치라는 민주주의의 학교를 잘 짓고 운영해서 훌륭한 정치지도자를 배출해 내는 것은 결국은 시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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