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늘빛, 구름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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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늘빛, 구름 그림자
  • 포천일보
  • 승인 2023.08.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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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포천문화원 부원장
김현철|포천문화원 부원장

도산서원(陶山書院)의 초입에는 멀리까지 산뜻한 풍경이 보이는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가 있다. ‘하늘빛 구름 그림자’라는 뜻의 이 명칭은 퇴계가 사모했던 주자(朱子)의 관서유감(觀書有感)이란 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반 이랑 네모진 연못이 거울처럼 열려 있어,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어울려 오가네. 묻노니. 그대 어찌 그리 맑을 수 있는가. 아득한 샘에서 싱싱한 물이 솟아 오기 때문이지(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선비들은 연못을 네모나게 팠다. ‘네모진 마음[方寸]’을 빗대어 그렇게 만들었다.)‘ 주자가 ‘책을 읽다가[觀書]’ ‘그런 생각이 들었던[有感]’ 모양이다. 연못이 얼마나 잔잔해야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보일까?

퇴계는 늘 (자신의 생각에) 감당하기 힘든 벼슬과 늘그막의 부족한 공부를 걱정했다. 벼슬을 벗어던지고 낙향하여 자신의 공부를 계속하기를 꿈꾸었다. 그 소원을 이루었을 때 고향인 낙동강 상류의 토계(兔溪)를 퇴계(退溪)로 고쳐 자신의 아호로 삼았다. 그토록 물러나서 하고 싶었던 공부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이 공부의 실체를 짐작케 하는 일화 하나가 『퇴계선생언행록』에 전한다. “일찍이 (선생님을) 산당(山堂)에서 모시고 있었는데, 마침 집 앞으로 말을 탄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일하던 중이 ‘그 사람 이상하네, 선생님 앞을 지나가면서 말에서 내리지도 않다니’ 하자, 퇴계가 말했다. ‘거 무슨 소리냐? 좋은 풍경 하나를 보탰을 뿐인데. 말을 탄 사람이 그림 속의 사람 같구나.” 이 일화를 보면 아마도 퇴계는 자신이 꿈꾸었던 공부의 경지를 이룬 듯하다.

현대인들의 마음은 상처와 불안으로 혼탁하다. 분노와 혐오가 들끓는다. 그런 마음에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비치기는커녕 자신과 타인, 나아가 세상의 모든 것이 일그러져 보인다. 공자의 지적처럼 남을 제대로 보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분노한다. 틈만 나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혐오하고 저주한다. 퇴계가 보았던 ’좋은 풍경‘이 보일 리가 없다. 우리는 그 발달된 정보통신 기술과 SNS가 뿌려대는 지식과 정보가 우리 마음을 얼마나 헤집어놓은 걸까? 우리는 물질적 풍요와 어울리지 않는 이 험한 현실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퇴계 최후의 작품 『성학십도』는 달랑 그림 열 장이다. 학원 선생님의 친절한 자습서 같은 율곡의 『성학집요』와는 다르다(두 사람의 기질은 많이 달랐다. 퇴계는 율곡의 학문적 재능이 아까워 학문에 몰두하라고 조언하고, 율곡은 퇴계에 대해 ‘나아가 백성을 윤택하게 해 주지는 못했으나 물러나 후인을 계몽했다(進不澤民, 退啓後人)’고 적었다. 사대부의 두 가지 과제 중 율곡은 사회적 책임[士]에 퇴계는 수양[大夫]에 관심이 많았다). 자신도 그게 너무하다 싶었던지 그림마다 설명을 붙여 놓았다.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도무형상(道無形象) 천무언어(天無言語).’ 인간이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고, 하늘은 결코 이끌어주지 않는다. 길은 어디에 있을까? 중용은 ‘하늘이 명한 것을 성(天命之謂性)’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니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쯧쯧…, 처음부터 내 마음에 유전자처럼 새겨져 있었던 것을. 그렇기에 우리 삶의 최우선 과제는 그 내재적 본성을 자신의 힘으로 발견하는 데 있다. 남에게 기댈 수도 없다. 유학에서는 용서를 빌 신도 없고, 자신의 죄를 누군가가 대신 짊어지질 대속(代贖)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 삶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고 불평하진 마시라. 유학은 인간이 타고난 선한 본성과 그것의 실현 가능성을 믿었다는 얘기니까. 그것이 유학의 우활(迂闊)한 생각이라고? 아니다. 근대의 데카르트와 칸트에서 현대의 들뢰즈까지 서구의 위대한 철학자들도 인간에 대한 신뢰가 굳건했다.

이제 자신을 믿고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온갖 불안과 탐욕으로 일그러진 자신 말고 자신의 실체 말이다. 우선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주자도 퇴계도 연못의 잔잔한 물 위에 비치는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를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 마음이 평화로워야 자신이, 타인이 그리고 온 세상이 제대로 보이는 법이다. 늘 일렁이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삶의 끝까지 자신이 타고난 위대함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또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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