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덜 합리적이고 더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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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덜 합리적이고 더 사랑하라
  • 포천일보
  • 승인 2023.08.3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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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포천문화원 부원장
김현철 포천문화원 부원장

필자는 종교를 갖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영성의 부족 때문인지 늘 ‘신을 믿느냐?’는 물음에 답하지 못해 그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혜의 정점에 종교와 철학이 있다고 믿는지라 믿음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관점에서나마 여러 종교를 공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주중에는 뛰어난 학승(學僧)의 불교 강의를 듣고, 주말에는 유튜브를 통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한 목사의 예배를 지켜보곤 한다. 그의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들은 적이 있으나 결정적으로 필(!)이 꽂히게 된 것은 책상 위에 놓인 볼품없는 액자 하나 때문이었다. 프린터로 대충 출력한 것 같은 글씨로 “덜 합리적이고 더 사랑하라”고 적혀 있었다. 갈등과 혐오의 공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종교인들이, 아니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에서 지켜야 할 제1원칙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시대가 가장 힘든 시대’고 생각한다고 한다. 현대인들도 종종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 인류는 역사상 최고의 풍요를 누리고 있으며 가장 평화로운 시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현대인들은 자신의 시대가 힘들다고 생각할까? 물질적인 요인은 아님은 분명하다. 한두 세대 이전에 우리는 끼니조차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공동체성은 살아 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함께’ 살아가는 일에도 관심이 많았다. 타인의 부족함으로 들춰내기보다는 덮어주려 노력하곤 했다. 이제 과거 선진국의 경험이 없는데도 선진국에 진입한 유일한 국가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분노와 갈등, 소수자, 외국인 등에 대한 혐오는 더 극단화되고 있을까?

과거의 우리는 이른바 ‘근대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근대’의 핵심은 ‘합리성’이다. 과거의 우리 삶은 비합리적 요소가 많았다. 어떤 곳에서나 이른바 ‘무대뽀’가 횡행하곤 했다. 합리성이 설 자리가 없던 곳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한국인들은 금세 합리적 사고를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개개인의 인식이 바뀌고 조직의 문화도 합리적으로 바뀌었다. 한 세대 이전의 우리 모습과 비교해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변모했지 놀랄 지경이다.

그런데 아뿔싸! 지나쳤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두 다리고 걷고, 새가 두 날개로 날 듯이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지적 합리성과 감성적 공감능력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뛰어난 공감 능력에 비해 부족한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 두 가지 요소가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지나쳐 버린 것은 아닐지? 지금 우리 사회구성원들 모두가 소리높여 자기만의 합리성을 외치고 있다. 마을에서, 직장에서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합리성을 동원하는 것이다. 공공성은 알 바 없고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는 합리성을 도구적 합리성이라고 한다. 한 사회학자는 ①‘과도한’ 개인주의와 ②도구적 합리성이 현대인의 불행한 삶을 불러왔다고 말한다. 급격하게 바뀐 직장의 문화가 그렇다. 요즘 조직의 리더들이 구성원들의 ‘3요’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그걸요?’ ‘제가요?’ ‘왜요?’를 ‘3요’라고 한단다. 리더와 구성원 모두가 혹은 어느 한쪽이 공동체의 이슈보다는 자신만을 위하는 과도한 합리성의 추구에서 비롯된 사태다.

과도한 (도구적) 합리성과 부족한 공감능력을 가진 사람이 타인과 조화를 이룰 수는 없다. 타인에게 이유없는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인간은 ‘관계 속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도, 잘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도,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는 효능감도 모두 타인에게서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타인에게 뿌린 씨앗이 그러하니 자신도 역시 타인에게 부정적인 정서로 되받는 것이다.

관계는 부메랑과 같다. 그래서 “덜 합리적이고 더 사랑하라”는 말은 전적으로 옳다. 타인에게 합리성은 덜 발휘하고 공감 능력은 더 발휘해야 한다. 자신이 그렇게 되돌려받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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