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DMZ 그린평화지대화, 거버넌스가 우선이다
상태바
[칼럼] DMZ 그린평화지대화, 거버넌스가 우선이다
  • 포천일보
  • 승인 2023.09.21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영민 대진대 교수
박영민 대진대 교수

한반도 평화와 남북통일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마땅하다.

독일이 그랬다. 1963년 7월 15일 남부 독일 슈타른베르크 호수(Starnberger See) 옆에 위치한 작은 마을 투칭(Tutzing)에서는 기독아카데미(Evangelischen Akademie) 정치토론회가 열렸다.

이 회의는 훗날 독일 통일의 주춧돌이 된 정책적 청사진이 발표된 날이 되었다.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수상이 행사에 지각하자 비서실장 에곤 바르(Egon Karl-Heinz Bahr)가 먼저 네 쪽 분량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접근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äherung)”와 “작은 걸음 정책(Politik der kleinen Schritte)”이 사민당 내독정책 수단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는 사민당 정부가 추진한 ‘신동방정책’의 골간이 되었다.

한반도 DMZ는 세 가지 점에서 특징적 조건을 이루고 있다.
첫째, 세계에서 가장 넓은 중무장된 지역이라는 점이다. 1953년 ‘군사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비무장지대(DMZ)는 설치되었다.
둘째, DMZ는 생태·환경의 보고이다. DMZ 일원에는 산림과 계곡, 하천, 습지 원형이 잘 보존돼 두루미와 반달가슴곰, 사향노루, 산양 등 멸종위기 종 등 2,930종에 달하는 생물종이 평화롭게 공생하고 있다. 철원평야는 국제적 보호종인 두루미, 재두루미, 저어새, 흑고니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판문점 일대와 파주, 철원, 강화도는 DMZ의 대표적 조류인 두루미 월동지이다.
셋째, DMZ 일원은 깊고 다양한 인문학적 콘텐츠를 품고 있는 지역이다. 특히 남북을 가로지른 인문‧역사 콘텐츠는 평화자원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 철원지역 DMZ 내에는 궁예가 839년 후고구려를 세운 이후 905년 개성에서 세운 태봉국 도성이 자리하고 있다.
넷째, DMZ는 세계의 비무장지대 중 평화적 상징성이 큰 ‘장소성(placeness)’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DMZ는 국제적 유산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한국전쟁 중 직접 전투에 참여한 나라는 20개 국가에 달하며, 전쟁으로 인한 전사자는 국군 13만 7,899명, 유엔군 4만 670명에 이른다. 여기에 실종자와 부상자, 그리고 민간인 피해자까지 합치면 그 수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더 늘어난다. 이처럼 한국전쟁은 냉전시기 가장 치열했던 국제전의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 군사정전협정 규정에 따르면, 한반도 휴전상태의 관리·감독 임무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에 있다. 이러한 점에서, DMZ는 세계 냉전사의 중요한 유산인 것이다.

DMZ·접경지역은 ‘다중심성(polycentricity)’을 지니고 있다. DMZ·접경지역 관련 행위자는 국내, 남북, 국제적 층위로 구성되며, 정부와 민간영역으로 구분된다. 또한 행위 유형에 따라 전문가와 활동가로 구분할 수 있으며, DMZ·접경지역이 지닌 환경·생태(eco), 기억(memorials), 평화(peace)의 이슈 내지 가치에 따라 편재된다. 전문가들은 해결해야 할 이슈로 인식하고 설명하며, 활동가들은 가치로 인식하여 실천적 노력에 중점을 둔다. 즉 활동가들은 자신이 내걸고 있는 가치의 보호(protection), 촉진(promotion), 강화(enhancement)를 실천 목표로 삼는다. DMZ·접경지역에 착종된 다양한 가치와 행위자들의 질서 있는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DMZ네트워크’의 수립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다중심성과 협력을 전제하는 가운데 민주성, 지속가능성, 현실성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협력 거버넌스로서 ‘DMZ네트워크’의 구상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4자 거버넌스의 수립은 다음과 같다. 중앙정부(관련 부처)-광역지방정부-기초지방정부체-시민단체의 대표가 독립적 행위자로 구성하는 거버넌스 체제이다. 이 방안은 국민의 참여 폭이 넓어 민주적 원리를 충실히 반영하는 장점이 있으나, 광역·기초정부 간 중복 문제를 지니고 있다. 둘째, 3자 거버넌스의 수립이다. 중앙정부(통일부 등)-광역지방정부(경기, 강원, 인천 외의 광역단체)-기초지방정부(15개 접경지역기초지방정부 외의 기초지방정부)-시민단체 간 거버넌스이다. 즉, 지방정부는 각각의 광역지방정부가 중심이 되고, 산하 기초지방정부와의 협의체를 이뤄 행위자로 참여한다. 가령 경기도의 경우, 경기도가 주도하는 협의체를 구성하며 협의체 내에 포천, 연천, 파주 등 기초지방정부가 참여하는 방식이다. 3자 거버넌스는 4자 거버넌스에 비해 공공영역이 하나로 구성됨으로써 의사결정 등에 있어 효율성을 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국민의 참여 폭이 상대적으로 넓지 않다는 점에서는 상대적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한편 이를 위해 정부는 접경지역에 대한 관점을 전환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즉 민북지역 및 접경지역을 규율하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접경지역지원특별법’을 넘어 ‘평화지역의 설치 및 육성을 위한 기본법’(가칭) 및 관련 조례 제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이 지역의 생태·환경, 기억, 평화의 가치를 보호, 촉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