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손흥민이 옳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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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손흥민이 옳다(2)
  • 포천일보
  • 승인 2023.11.0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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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포천문화원부원장
김현철|포천문화원부원장

10월24일,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9라운드 경기에서 손흥민이 주장으로 있는 토스넘홋스퍼는 플럼을 2:0으로 이기고 순위표의 맨 윗자리를 다시 차지했다.

이 경기에서 손흥민 선수는 1골1도움으로 승리를 견인하며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이 발표한 최우수선수(MOM)에 선정되었다. 결과만을 놓고 보면 이 경기의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토트넘 감독 엔제 포스테코글루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뛰어난 레토릭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강한 어조로 선수들을 질책했다. 전반전에는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으나 두 번째 득점 이후 선수들이 느슨한 플레이를 펼쳤다고 나무랐다. 계속해서 성장하려면 승리한 경기에서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확실히 그랬다. 토트넘이 2:0으로 앞서나가자 얇은 선수층을 감안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손흥민을 비롯한 주력 선수들을 교체했다. 그러자 경기 분위기가 바뀌면서 토트넘은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다. 문제는 골키퍼 비카리오에게서 시작되었다.

현대 축구는 골키퍼에서부터 시작되는 빌드업(수비에서 상대방의 압박을 무력화하고 공을 소유하면서 차곡차곡 공격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축구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급박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골키퍼가 공을 멀리 차내는 장면을 보기 힘들다. 평소 빌드업의 출발점 역할을 잘 해냈던 비카리오는 이날 전반전 한 차례의 실수 때문인지 주력 선수들의 교체 이후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공을 멀리 걷어내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당연히 토트넘은 상대에게 높은 점유율을 허용했고 상대의 위협적인 공격이 이어지면서 여러 차례 실점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자초한 위기를 여러 차례 뛰어난 선방으로 수습하고 무실점 승리를 지켜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골키퍼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었기에 선수단 전체에게 강한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문제의 핵심에 비카리오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올해 토트넘이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승승장구하는 이유를 감독의 탁월한 역량과 손흥민의 리더십에서 찾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날 경기 후 손흥민의 리더십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면이 펼쳐졌다. 평소 경기가 끝나면 골키퍼 비카리오는 손흥민을 안아 들어올려주곤 했었다. 그런데 이날 교체되어 있다가 운동장으로 들어간 손흥민은 비카리오를 평소보다 더 꼭 안고 들어올려 주었다. 어떤 의미였을까?

비카리오는 올해가 프리미어리그 첫 시즌이다. 많은 이들이 그가 제법 순발력은 뛰어나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거친 프리미어 리그에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원하는 빌드업의 출발점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그는 적응 기간도 필요 없다는 듯 첫 경기부터 이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그는 그것이 손흥민의 도움 덕분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었다. 이 모든 것이 이날 경기 후반에 무너졌던 것이다. 그의 강점과 약점이 동시에 드러난 경기였다. 손은 최고의 기량(위기에서의 선방)을 발휘하고, 발은 최악의 플레이(빌드업 실패)를 보여준 것이다.

리더로서의 손흥민이 빛나는 것이 바로 이런 장면이다. 이날 손흥민의 눈에는 ‘빌드업에 실패한’ 비카리오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선방을 거듭해서’ 무실점 경기를 이끌어낸 비카리오만이 보였을 뿐이다. 그렇다. 그는 부정적인 부분보다는 긍정적인 부문에 초점을 집중하는 사람이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 기어이 자신의 성취를 이뤄내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사람이다. 이것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증명된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뛰어난 리더들은 사람들의 강점을 먼저 본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이끈다. 인간은 통제받거나 질책받을 때가 아니라 응원받고 지지받을 때 자신의 최고를 보여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리더와 함께 있으면 개인과 조직의 역량이 배가된다. 같은 사람, 같은 조직인데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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