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적 이성과 공적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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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공적 이성과 공적 감정
  • 포천일보
  • 승인 2023.11.0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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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민 대진대학교 교수
박영민 대진대학교 교수

다원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균열이 존재하며, 그로부터 갈등적 상황이 파생된다. 그런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제거되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합리적 해결을 통해, 사회적 합당성을 충족해 나가야 한다.

이는 이성적 대화를 통해 가능하다. 우리 사회는 1987년 시민적 민주화 요구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수립한 이후 다원주의적 갈등과 소통의 혼재를 반복적으로 경험해 왔다. 그러면서 질서화를 모색해 오고 있다. 이는 광화문의 장소성에 투영돼 있다. 광화문을 놓고 어떤 이는 2002년 월드컵 응원의 경험을, 어떤 이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의 현장으로, 또 다른 이는 2017년 촛불의 상징으로 인식한다.

한국 사회가 보여준 의사소통과 포괄적 교리 간 갈등이 다원적으로 편재돼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포괄적 교리 간 균열이 합의에 도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와 같은 근대화와 급속한 사회변동 경험을 지닌 사회에서는 가치관의 대립과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야말로 ‘질서정연한 사회’의 설립을 가로막는 핵심적 문제가 되곤 한다. 아니 사회 문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주의자 존 롤스(John Rawls)의 설명에 따르면, 공적 이성은 민주적인 사람들의 특징으로 시민들이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며, ‘공중의 선(the good of the public)’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좋은 민주주의는 공적 이성에 기초한 공중의 선을 지향하는 것이지만 합리성과 합당성이 조화롭게 제도화될 때 성립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따라 더 좇아가 보면, 다원주의 사회는 포괄적 교리 간의 상충 현상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점에 이른다. 다원적 민주사회에서 사회적 갈등은 일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갈등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롤스에 따르면, 공적 이과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기댈 때 비로소 정당성을 갖게 된다. 민주적 절차와 공적 합의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 달 우리 사회는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놓고 들끓었다. 정부가 먼저 시작했다. 2025학년도 대입에서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러자 사회적 관심은 즉각 증원 규모에 집중되었다. 처음에는 2000년 의약분업 당시 감축했던 351명 증원이 제기되었다가, 512명 중원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후 증원 규모는 더욱 커졌다. ‘이번 참에 증원할 바에 1천 명쯤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서 ‘5천 명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렀다. 어떤 이는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언을 바탕으로 환자에 대한 치료보다 온전히 자신의 돈벌이에 몰두한 부도덕한 집단에 불과하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OECD 국가 중에서 한국 의사의 소득이 가장 높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했고, 지방 의료원에는 수억 원을 연봉으로 제시해도 지원자가 없다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다 좋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들이 공론장에서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년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는 해이다. 정치인은 자신의 지역에 의대 유치를 강력한 무기로 삼기 위해 삭발을 마다하지 않는다. 대학입시를 앞둔 학부모와 학생은 의대 정원 확대가 자신의 진로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을 기대하며 증원을 주장하고, 입시학원들은 사교육 시장의 수요 창출을 반기고 있다. 의대 정원은 다양한 사회적 행위자의 이익을 충족시켜 줄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론장은 ‘공적 이성’보다 ‘공적 감정’에 지배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공론장의 오염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고안한 정치제도 중에서 탁월한 제도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최선의 제도라고 말할 수 없다. 언제든지 중우정치로 변질할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15세기 플라톤의 눈으로 보면, 공적 이성이 작동하지 않은 사회와 정치는 ‘타락한 공동체’를 만든다.

플라톤은 ‘이상적 정치’란 ‘철인이 왕이 되거나 왕이 철인이 되는 정치’를 철인정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법률>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미련을 던지지 않고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의 위험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치를 살짝 제시하고 있다. 정치의 지성화를 위해 다수의 철인으로 구성된 ‘야간위원회(The nocturnal council)’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전문가집단의 합리적 판단을 강조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의료체계 문제의 합리적 해결을 위해서는 의사 집단에 대한 감정적 시선, 일부 정치인의 정치적 이해, 학원과 학부모의 욕망을 제거한 바탕 위에서 ‘공적 이성’에 기한 공론장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결론은 의료 관련 전문가집단이 플라톤의 ‘야간위원회’ 구실을 담당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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