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과 이성계 연관성 스토리텔링 하면 ‘관광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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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과 이성계 연관성 스토리텔링 하면 ‘관광자원’
  • 포천일보
  • 승인 2015.12.11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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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 이전 이성계의 경제적 기반은 포천이었다는 주장 제기

포천지역과 태조 이성계의 연관성을 스토리텔링하면 관광 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11일 포천문화원 3층 강당에서 학술심포지엄에서 김덕원 명지대 교수는 ‘기록으로 보는 포천과 태조 이성계’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태조실록을 근거로 조선건국 전후 이성계와 포천의 연관성이 많다고 주장했다.

▲ 김덕원 명지대 교수는 ‘기록으로 보는 포천과 태조 이성계’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태조실록을 근거로 조선건국 전후 이성계와 포천의 연관성이 많다고 주장했다.

김덕원 교수에 의하면 조선건국 이전시기인 잠저기(태조 이성계 즉위 이전 시기)에 이성계는 포천지역일대, 즉 재벽동(현 소흘읍 이동교2리)에는 첫째부인 신의왕후 한씨가 머물렀다. 이곳은 현재 부인터로 불리는 곳이다. 또한 철현(鐵峴), 즉 지금의 가산면 금현2리 궁말에는 둘째부인 신덕왕후 강비가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이성계는 함경도 동북면 지역을 중심으로 군사기반을 마련했는데, 개경에서 화령(지금의 영흥)에 이르는 중간지점에 여러 군사거점을 확보하여 유사시에 대비했다. 군사적 기반을 뒷받침은 전장(대규모 농장)으로 삼았는데, 포천지역은 그의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는 주요 전장이었다.

1388년 고려 우왕 때 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 한씨와 계모인 강씨 등 식솔은 동북면 지역으로 피난을 떠났다. 이틀이 지난 다음 철원에 도착해 한충이라는 사람 집에서 머무르는 동안 위화도 회군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포천으로 돌아왔다고 태조실록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건국 이전인 잠저기에 포천지역과 태조 이성계의 관련성은 포천지역에 사가와 전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천지역은 이성계가 왕위를 이방원에게 물려준 후 발생했던 함흥차사와도 관련이 있다. 대부분 정사에는 기록이 없고, 야사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대적적인 야사 기록은 조선후기 이긍익이 편찬한 연려실기술에 나온다. 주목할 만한 것은 태조 이성계나 함흥차사들이 함흥으로 할 때는 모두 포천지역을 경유해야만 했다는 사실이다. 즉, 당시 함흥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43번 국도인 경흥로를 통해서만 가능했는데, 그 주요 거점 중의 하나가 바로 포천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김덕원 교수는 끝으로 포천지역과 태조 이성계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개발한다면 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발전 뿐만 아니라 관광 등 포천지역 이미지를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포천과 관련되 이성계의 문화유산'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이우형 현강역사문화연구소장은 조선 건국이전과 이후 이성계와 문화유적의 연관성을 발표했다.

이어 홍영의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 역시 김덕원교수와 동일한 맥락에서 ‘태조 이성계의 포천지역 경제적 기반’의 주제발표를 했다. 또 이우형 현장역사문화연구소장의 ‘포천과 관련된 태조 이성계 문화유산’, 이병찬 대진대 교수의 ‘태조 이성계 설화의 특징과 활용’에 이어 마지막으로 김재홍 한국문화유산연구센터 대표가 ‘포천지역 태조 이성계 유적의 활용방안’의 주제발표를 했다.

한편 이 자리에는 김한섭 포천부시장과 정종근 의장, 김성근 포천교육장, 태조 이성계의 후손인 전주이씨 등 참석해 진지하게 토론 모습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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