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암 추모시 낭송회 선생의 삶과 사상 그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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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추모시 낭송회 선생의 삶과 사상 그려내다
  • 포천일보
  • 승인 2017.11.0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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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면암문화제 첫 번째 행사 포천문인 대거 참여 깊은 인상 줘

면암 최익현선생 숭모사업회는 10월31일 포천시립중앙도서관 세미나실에서 제1회 면암문화제를 첫 번째 행사로 면암 추모시 낭송회를 가졌다.

이날 추모시 낭송회는 ‘면암이 돌아오시다’라는 주제로 포천시문인협회와 마홀문학회, 반월문학회가 주관한 행사로 면암 최익현 선생의 삶과 사상, 그리고 생애를 그려냈다. 낭독된 추모시는 면암 선생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10월의 마지막 밤에 진행된 추모시 낭송회는 깊어가는 가을저녁과 어우러져 함께 한 참석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다음은 이날 낭송된 時를 낭송자 사진과 함께 원문 그대로 게제한다.

한편 면암문화제 두 번째 행사로 11월1일 오후 7시 ‘마지막 선비 최익현’ 북콘서트가 포천문화원 3층 강당에서 개최된다.

북콘서트는 허훈 대진대 사회로 최종규 전 문화원장의 ‘면암 가족사’, 김현철 포천교육지원청 교수학습과장의 ‘면암의 忠과 義’, 이원석 포천시의원의 ‘면암 사상과 포천’이라는 주제로 대담형식의 토크가 진행된다.

아울러 북콘서트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국악공연과 대금연주, 상소문 낭독, 살풀이 공연이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면암을 부른다

- 게 누구 없소 -

                                                          이석구

면암은
자신의 뜻이 아니게
세 번
배타고 바다를 건넜다

첫 번째 제주도 유배는
공부하며
가르치며
글도 지었다

갇혀 살면서도
하늘처럼 높게
바다처럼 넓게
세상을 보았다

두 번째 흑산도 귀양살이는
바람과 파도의 섬에서
사람이 그리운 귀양살이를 했다

세 번째 물 건너 대마도로 잡혀 갔을 때
일본 것 안 먹겠다고
자신의 산계를 버티며
굶어 돌아갔다
면암 정신의 극치였다
첫 번째 제주도 귀양에서
흥선 대원군의 섭정을 끌어내리고
바른 정치를 갈망하였다

두 번째 흑산도 유배는
고종 임금의 잘못을 나무라고 가르치며
외국의 침략을 결사 저지하였다

세 번째 대마도로 잡혀간 것은
약소국의 한계를 절감한
살신의 본을 보인 민족의 항거였다

면암의 시신이
고국땅 부산으로 돌아왔을 때
수백만 민초들이 그 뒤를 따르며 슬퍼했다

그는 죽지 않았다
그는 죽지 않는다고 믿었다

면암 가신 지 110년이 되는 때
이 땅에 서기(瑞氣)가 어린다

그 잘난 사람들 다 어디갔나
게 누구 없소?
면암을 부른다
애타게 부른다

그 님을 알고 있는가

- 면암 최익현 선생 숭모기념에 부쳐 -

임관영

조선 후기의 학자요 문신이요 애국지사
그 님을 알고 있는가

끈질긴 상소 대원군 집권을 무너뜨린
유림의 거벽 위정척사 이신
그 님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나라 뺏기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단발령 단발령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우리에게 사는 법과 죽는 법을 가르쳐준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의
그 님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벼슬길에서 물러나 조야에 묻혀살던
제주도 전라도로 실향의 유배길을

그대로 하늘은 청청 맑은데
이 응어리 응어리-
밤마다 강가에 나와 언제나 삭아 버릴까
강물에 띄어버리면 삭아버릴까
가슴저린 기나긴 그 역정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구겨진 이 나라 산천
죽창이든 조선낫이든 다 들고 일어서라
일어나 태인으로 가라
아니면 우리는 노예가 된다 의병의 깃발을

사람들아
들어라 들어야만 한다
어둠을 밟고와 귓전을 치는 조선소나무
청솔 바람소리
밟아도 밟을수록 돋아나는 청보리의 소리

남들은 세상 돌아가는대로
잘도 돌아가지만
나만의 부귀영화 향기론 꽃냄새
그 알뜰한 유혹을 물리친 그 님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북새통에도 왜놈에게 아부 잘 하며
놀아나던 놈들 명문대가 노릇하며
북새치던 놈들이 좋아하던 날
조선소나무처럼 옹이 많은 지조를 지키다가
끌려간 날은 대들보가 내려앉았다

대마도로 끌려가 부서진 몰골로
부산항에 돌아온 시신으로 돌아온 날의 분노가
역사를 쾅쾅 찍을 때
산마다 맥이 끊겨 산천이 소리없이 울었던 날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아, 부끄러워라
면암 최익현 선생이 지키던 나라
그 때 그 시절 기나긴 세월
아직도 나라는 나라가 아니여
허리 꺾이고 강대국의 비바람
그때나 지금이나 외세의 비바람

이 난국이 어찌된 것이냐 어찌된 것이냐
님의 말씀 들어라
“난적을 치는 일은 사람마다 해야 할 일
고금이 다를 것인가 물어 무엇 하리요”
그 님의 애국 호국 정신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눈보라의 칼을 가는 청솔잎을 보라
잎잎마다 생기가 넘치는
서리 묻은 껍질의 햇살같이
따사롭고 강한 우리들이 나아갈 길

혹자는 그 님을
“우둔했다고 어리석었다고 고집불통이라고”
말들 하지만

죽어서 오히려 빛나는 별
누가 님을 죽었다 하더냐
영원을 사시는 별이 되어 빛나는
그 님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할아버지 그 님의 마지막 모음이
피보다 진한 때문일까
이 가을 오늘 밤에도
하얀 구절초에 별이 내린다

 

勉庵 崔益鉉 선생을 그리워하다.

이 재 옥

 

순조 33년 1833년 12월 5일 인시
하늘에서 광채가 온 누리에 내릴 때
경기도 포천현 내북면 가채리 (현 신북면 가채리 711번지)
경주최씨 최치원 27세손 화서공파 19세손
최 대 옹의 둘째아드님으로 태어나셨다.

이름은 익현(益鉉), 자(字)는 찬겸(贊謙), 호(號)는 면암(勉菴)
남달리 골격이 비범, 눈의 광채가 별빛과 같다고
관상쟁이의 말이 어린 익현을 보고 재주가 뛰어나 기남(奇男)이라 했다.

수년간 흉년으로 가세 기울어
부모님의 자녀교육 성념으로 고향을 등지고
네 살 때 단양 이사 시작으로 여러 번
6세 때 글공부 시작 총혜가 뛰어나셔서
모든 사람들 크게 기대를 했다.

여러 번의 관직을 두루 거치시면서
장장 50년에 걸쳐 고종과 주고받은
상소문과 답서를 통해 면암의 한결같은 인간적인 면모를 읽을 수 있다.

편안한 삶을 포기하시고 선비다운 선비로서
기울어 가는 나라 구하시려

목숨 바쳐 상소하기를 수차레
당시 중화와 이적이 뒤섞인 때에 도끼를 지니시고
대궐에 나아가 엎드려 상소하며 인륜과 금수를
판별하려 하셨고 간흉들이 권세를 부릴 적에 전원으로
돌아 가셨으니 나아가고 물러남이 예(禮)에 맞았습니다.

을사조약이라
한일의병 이끄시며 73세 왜적 호도에게 체포
일제침략에 끝까지 맞서 싸운 의병장이요
조선의 마지막 선비 면암 최익현선생의 삶이다.

구한말 마지막 애국지사
침략해 들어온 열강들과 변절한 지도자들 사이에서
선생은 조선 오백년의 근간이셨다.

어느 선비의 시(詩) 중에서
붉은 해는 선생의 마음이 없어지지 않음을 증명하고
무지개 눈물은 선생의 울분을 씻을 수 있는 조짐이니 슬프다고
흐르는 눈물 바람에 날려 온 하늘에 비가 내리고
어느 곳 님 의 유택을 정할까?

74세 4월 전북 태인 의병총수를 지내시고
6월 일본 사령부 구치되셨고
7월 일본 대마도 엄원 위수령 경비대 수감
우리의 사신과 질서, 왕조를 지키고자
한결같이 투쟁 그리고 의병 봉기 후 끌려간 대마도에서
일본 땅에서 난 음식은 먹지 않겠다며
단식 항거 시작을 하셨다.

허리 꺾이는 나라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오백년 사직을 세우려
선생은 구차하게 사느니 식음 전폐해 죽음을 택하겠다고
면암선생이 남기신
유소(遺疏)

1906년 2월 74세 되는 해 가묘에 하직 인사를 하고
그해 11월 대마도에서 마지막으로 임금께 올린 글
죽음의 이른 신 최익현은 일본 대마도 왜놈 경비대 안에서
서향 재배하고 황제폐하께 말씀을 올립니다.
신 이 이곳에 온 이래 한술의 쌀도 한 모금의 물도
모두 적의 손에서 나온지라 차마 먹는 것으로
의(義)를 더럽힐 수 없어 그대로 물리쳐 버리고 단식(斷食)으로
지금 선왕(先王)의 의리에 따르고 있습니다.
신이 죽는 마당에 이르러 정신없는 소리를 지껄인다고
속단마시고 더욱 보중하시기를 지하에서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1906년 11월 17일 인시(새벽4시)
면암선생은 싸늘한 감방에서 눈을 감으셨다.
74세 생에 단 한 번도 휜 적이 없는 대나무가 꺾이는 순간이다.
그날 밤 대마도의 하늘에서는 별똥별이 동남쪽으로 떨어지며
환한 빛을 뿌렸다 한다.

1906년 11월
유해 환국 온 국민 호곡을 했고 실질적인 항일의 국민장
1907년 4월
충남 논산 노성 월오동면 지경리 무동산 계좌 입장
1907년 11월
일제 강압에 의해 충남 예산군 대흥면 몽수산 임좌 안장
(현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
1973년 4월
춘추대의비를 제막하다 (예산군 모현사업회 건립)

면암선생의 전국 사, 우 유적이 34개소에 모셔져 있고
면암선생 영정을 배향한 채산사는 포천 신북 가채리 소재
경기도 기념물 30호로 지정됐다.

우리 모두는
기억의 창고가 비워지지 않게
빗장을 열어 두어야 겠습니다.

 

님은 조국의 가슴에 남아있고

원 종 관

선비 정신의 표상을 보이신 어른이시여 !
관상쟁이가 예언했듯이 “범머리에 제비턱 가진 범상한 아이”로
포천에서 태어나 곧은 선비정신을 지키고
오직 나라와 백성 위해 평생을 펼쳤습니다
어린 나이에 명경과에 장원급제하였으니 “떡잎 보면 안다” 했습니까.

탐관오리가 득실대던 그 시대 역사 혼류 속에서도 곧은 충정으로
때론 임금과 왕정에 맞서가며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지녔던 고귀한 선비정신.

위난과 위정을 보면 도끼 상소까지 서슴치 않았고
목숨 내놓기 주저하지 않았는데 옥살이,귀향살이
몇 번이며 외진 곳이나 바다건너 어디든 못가셨겠습니까.

일본과 싸워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의병을
일으켰다고요
후손들 보기에 부끄럼 없는 길로 가시겠다는 신념이였겠지요
오늘, 우리도 그때 의병들이 외쳤던
"최익현선생 만세, 면암선생 만세, 대한제국 만세" 입니다.

비석 하나 남기려 가셨겠습니까
그 놈들 땅에 가서 옥고함으로써 죄를 뉘우치게하고
선비정신이 뭔지 깨우치려 하신 것 아닙니까
그 놈들 것이라면 밥도 물도 드시지 않고서야
어찌 살기를 바랐겠습니까.

옥살이 할 때 낮에는 주역을 읽고
밤에는 큰 소리로 시를 외웠다니
그래서 포천에는 유학 한학 문학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입니까.
선비님으로 "포천정신이 더욱 각인되고 뻗어나갈 것" 입니다.

그날 밤에는 대마도 하늘에 큰 별똥별이 떨어지며
환한 빛을 뿌릴 때 그 놈들이 크게 놀랬다지요
죽어서도 몇 번을 옮기면서 가시는 곳마다 애국 애족이 뭔지
교훈을 남기시며 백성들을 일깨웠지요
우리들 가슴에 영원히 남아 빛나고 있긴 하지만
포천에는 언제 오시렵니까.

나라위해 한 줌 흙으로 편히 잠들지도 못한 혼령
저희들 가슴과 혈관 속에도 흘러 파도처럼 솓구쳐 오릅니다.
선비님이시여 !
목숨 받쳐 조국을 불태우는 등대가 되어
망망대해로 나아가게 밝히셨습니다
어찌 잊으리오
걸어가신 그 길
하고자 하신 말씀
행동으로 보이신 충직한 선비정신
우리들 가슴에 불씨가 되어 영원히 남아 빛날 것입니다.

님이시여!
선비님의 고귀한 희생은
"포천 정신"의 밀알이 되고 온 나라로 뻗어나가
후손들 가슴에 영원히 남아 이어나갈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시 옵소서.

민족혼의 불빛이 되신 임이시여

 

               시인 홍성자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험난한 길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걸어가신
선비로서의 올곧은 생애

자신을 위한 입신양명보다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한 헌신으로
한 시대를 아우르던
한결같은 인간적인 면모를 지니신
임이시여

높고 낮음의 구분 없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옳은 소리를 내며
관리로써 공명정대한 의로운 길을
걸어가신 임이시여

시대의 아픈 단면을 끌어안고
충언을 아끼지 않았던
신하로서 해야 할 도리를
끝까지 지켜낸 임이시여

혼란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전통 사상과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한결같은 애국정신의 길을 걸으신 임이시여

서구 열망의 침략에 맞서
500년 종묘사직을 지키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는 투쟁으로
우국 충절의 길을 걸어가신
임이시여

임의 지난 발자취는
언제나 유구한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민족혼의 수호자 시며

여기 지금 우리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하는 임!

민족혼의 불타오르는 열망으로
우리의 나갈 길을 밝혀 주는
영혼의 등불이여!

아, 임이시여! 임이시여 !!

임은 가고 없지만
임의 뜻을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민족의 넋이 되신 임이시여

 

면암 최익현선생을 숭모하여

손진홍

 

주검으로 돌아올 때
현해탄의 푸르른 물결마저 검게 탔다
동래성은 텅 빈 채
왜놈 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바름을 세우고 삿됨을 척결하려던 이 땅에는
삿됨으로 가득찼다
왜놈들을 몰아내고자 세운 기치는
동족의 가슴끼리 총칼을 드려대었다
소중화로까지 공자님 모시기는
오랑캐로 채워지는 세상으로 변했다
조선의 가치를 존숭하고자 한 노력은
삭발령으로 백성의 머리는 잘려나갔다
부정부패 척결을 죽기로 간했지만
탐관오리는 세상을 덮었다
외세는 안 된다고 엎드려 간했지만
눈 부릅뜬 외세는 득실거렸다
왜놈 땅을 밟지 않고, 왜놈 곡식 입에 넣지 않는 절개
지켰으나, 돌아오는 주검인들 어찌 다리를 편히 뻗겠는가
행색 남루한 백성들
주검 지나는 길목에서
처연하게 속울음 우는
기막힌 세월 지켜보며 가야하는 그 길을
주검인들 어찌 걸음이 떨어졌겠는가
죽기로 간하고, 의병을 봉기한
그 기개
그 절의
그 숭고한 정신
대한의 푯대로 무궁하게 펄럭이리라

 

면암을 기리며

이 운 순

조선의 마지막 선비요,
마지막 충신
면암,
임께서 목숨 바쳐 지켜내신 이 땅위에
당신을 기리기 위해 우리는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의 나라사랑 충언과 상소 또 상소
제주도, 흑산도,
위리안치 유배생활
단 하나의 목숨조차 초개와 같이 버리시는
당신의 그 충정을 저희는 배웠습니다.

대원군과 싸우고
민비와 싸우고
고종과 싸우고
그렇게 한평생을 싸웠지

일본과 싸우고
서구 열강과 싸우고
붓끝으로 싸우다
도저히 안 되니까 의병을 일으켰지,
초장에 질줄 뻔히 알면서도
그 방법밖에 없다는 이유로

종당엔
칠십 넷 노구로
적의 땅 대마도에서
그렇게 영어의 몸이 되시었습니다.

적국의 음식은 모두 싫다
노기 띤 음성을 뒤로하고
아,
당신은 허망하게도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하늘도 울고
산천초목도 울고
만백성이 모두 울던
병오년 동짓달 열이레 그날에

님의 종소리를 들으며

                       -면암 최익현선생을 추모하며-

  이 원 용

가난한 선비의 핏줄로 태어나시어
역사의 흔들림을 몸소 실천하시다
태양과 달과 별들의 흔적속으로
떠나신지 일백년이 흘렀나니

여기 왕방산 자락의 고귀한 터전에
꽃으로 핀 저희들은
님의 흔적을 어루만지고 있나이다

님께서 뿌려놓으신 너그러운 비판정신
시대를 갈구하는 비수같은 표출
법률과 도의를 섬기는 비범의 공리는
이 나라 민초들의 가슴속에 잠겨있는
의로운 거울이였습니다

긍정의 논리로 이 세상을 밝혀주신 공덕으로
어린 애국은 걸음마의 폭을 넓히고
고명한 자유를 위하여
개혁을 원하는 민초들에게
의로운 새바람을 심어주셨으니

어두운 곳에서의 소통을 위하여
족벌들의 광기어린 행실을
내면으로 치유할 수있다는 증거를
천하에 제시하심에
이 나라 민주주의는 성숙하였으며

반만년을 이어온 어눌한 문명이
새로운 지평을 향해 고개를 들때
님께서는 변화를 역설하시고
올곧은 민족의 지표를 알려 주시니
자랑스런 유산임을 터득하였습니다

시대적 사명을 민족의 가슴에 심어
창조적 문명을 지향하신 님은
애국자요 사상가요 개화의 실천자요
창조적 문명을 지향하신 선구자 이시니

이세상 백성들이 갈망하던 흐름의 원리와
순리를 거부하던 사대부의 철학을
공존의 논리로 수행하시면서
바른길로 인도하신 정도를
후세들이 이행하여야 하기에
의식의 줄기를 키워주신 큰 뜻과
올바른 실천을 명령하심을
저희들의 성숙으로 이어 드리나이다
실천하나이다

충정의 혼이시여

                       - 면암 최익현 선생을 추모하며-

       이 천 희

조선말기의 학자요 민족의 표상이시며
의리와 성스러운 충의를 몸소 실천하신
유림의 거벽이시기에
위정척사의 화신으로 민족자존을 품에 안겨주신
명망 높은 인품이시기에
님의 삶은 한사람의 삶이 아닌 천하동생이요
님의 순국은 한사람의 죽음이 아니 천하동사요
대의 정신은 가난한 국민공존의 고귀한 사상이였기에
나라 사랑과 민족정신을 근간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의 고귀한 사상으로 갈등과 반목을 일삼아 온 현대사에
큰 교훈으로 남아
나라의 사정이 위난지경에 이르렀을 때
원로나 지식인들이 취해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를
명명백백하게 보여 주신 귀감이어라

동족의 가슴에 총을 쏠 수 없다면서
의병군의 해산을 명하시며
님께서 주장하신 대의정신은
민족 모두가 이기는 공승공존의 길이였기에
74세의 노구를 이끌고 적들의 앞으로 나가
스스로 포로가 되기를 자청한 애국심은
『남의 노예가 되고 남의 신첩이 된다면
살아도 죽는 것만 못하다
나라가 없고 군주가 없으니
우리 3천리 국민은 모두 노예이며
우리에게 이웃 나라가 있어도
스스로 외교하지 못하고 타국을 시켜 외교하니
이것은 나라가 없는 것이요,
우리에게 토지와 국민이 있어도
스스로 주장하지 못하고
타국을 시켜 대신 감독하게 하니 이것은 군주가 없는 것이라』 하시며
잘못 만들어진 조약으로 인한 망국을 예언하는 구절이 있음을
스스로 우러나는 애국심속에서 깊이 통찰하시니
가난과 세습으로 어지러운 당시 국내외 정세를 살피시는
님의 정신은 냉철한 애국이념이였기에
내가 어찌하여 적의 음식으로 생명을 연명하여야 하느냐시며
스스로 아사순국하시니 
님의 희생은 대한민국의 생존에 영원한 빛이어라 

님이시여
반만년을 지켜온 이 나라와 백성들에게
안위와 희망과 평화를 안겨주소서 
그리고 역사의 그루터기에서 허덕이는 이 강토에
통일의 햇살이 비추이게 하여 주소서

면암(勉菴)선생은 청송 거목이시다

시조시인 류 미 월

 

▲ 류미월 시조시인을 대신해 박명숙 면암숭모사업회 부회장이 낭독했다.

포천이 낳은 영원히 푸르른 저 소나무
사람보다 깊은 속내 바다보다 깊은 충정
면암(勉菴)의 너른 품 아래, 대를 잇는 그림자로

십년 지나 백년 지나 후대에 전해지는
묵언으로 전한 말씀 그 향기 푸르러서
옹이 진 우듬지마다 말씀으로 서려있다.

흰 구름도 발길 멈춰 쉬어가는 신북 땅엔
시간의 강 흐를수록 그 큰 덕 더욱 빛나
솔향기 깊이 밴 뿌리, 왕조 너머 뻗는다

追慕 勉菴 崔先生

柏林 이 병 찬

 

靑城勝地勉翁生 청성승지면옹생
追慕官民滿座成 추모관민만좌성
救國丹心星共耀 구국단심성공요
抗倭强志日同明 항왜강지일동명
破邪顯正千秋鑑 파사현정천추감
奉義殫忠萬歲聲 봉의탄충만세성
斷食嶋邦終殉節 단식도방종순절
遺風繼業永年誠 유풍계업영년성

추모 면암 최선생

포천 아름다운 땅에 면암어른 나셨으니
추모하는 관민 자리 가득 이루었네.
구국의 붉은 마음 별과 함께 빛나고
항왜의 굳센 뜻 해와 같이 밝아라.
파사현정 함은 천추의 거울이 되니
봉의탄충은 만세를 부르리.
섬나라에서 단식으로 끝내 순절 하셨으니
유풍과 업을 잇는 정성 영원하리라.

勉菴先生追慕行事

靜齋 楊 永 玉

 

勉庵崇慕市民生 면암숭모시민생
思想傳承集會成 사상전승집회성
謹拜靈祠忠志察 근배영사충지찰
圖書公館紀心明 도서공관기심명
妖邪戚戚從仁意 요사척척종인의
正義堂堂實直聲 정의당당실직성
我巷平安邦福祉 아항평안방복지
雅懷永遠守眞誠 아회영원수진성

면암선생 추모행사

면암선생 숭모사업회 시민들이 만들어서
사상을 이어 가자는 집회가 이루어지었네
신령모신 사당에서 삼가 절하며 충의 뜻을 살피고
도서관공관에서는 기념하는 마음 밝히니
요사함을 근심하며 두려워하는어진 뜻 따르고
정의에 당당한 바른 소리 실제로 행사면
내 동네는 평안하고 나라는 복지이니
우아하게 품은 생각 영원토록 진성으로 지켜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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