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세이] 오늘도 나는 미용실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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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세이] 오늘도 나는 미용실에 간다
  • 김현철 포천교육지원청 장학관
  • 승인 2018.01.0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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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철 포천교육지원청 장학관

오늘도 나는 늘 다니는 미용실에 간다. 물론 머리를 다듬기 위해서다. 미용사 부부가 운영하는 이 곳은 주변의 다른 미용실과 달리 2층에 있다. 접근성이 좋지 못한 셈이다. 실내에 들어가면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듯한 인테리어와 누군가 버린 것을 주워 모은 듯한 잡다한 가구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면서도 항상 손님이 넘친다. 몇 시간을 기다리기도 하고, 다른 곳에 갔던 손님들이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인천, 수원처럼 상당히 먼 곳에서 찾아오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여럿이 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머리를 손질하지 않을 때도 들르는 곳이 되었다. 그 집 딸 아이의 백일과 돌을 챙기기도 하고 명절엔 아이 손에 용돈을 쥐어주기도 한다. 커피를 살 때 그들 부부의 커피를 같이 사가기도 하고, 끼니 때가 되면 그들이 아침에 챙겨온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한다. 손님이 없을 땐 같이 기타를 치기도 하고, 때로 집에서 농사지은 거라며 고추나 상추 봉투는 건네받기도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덴베르크(Ray Oldenburg)는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아주 특별한 공간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는 그것을 제3의 공간이라고 불렀다. 인간에겐 원래 두 개의 공간이 있다.

바로 제1의 공간인 가정과 제2의 공간인 일터이다. 행복한 공동체를 이룬 이들에겐 1, 2의 공간 외에 카페라든지 커피숍, 미용실, 서점, 바 같은 제3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제3의 공간에서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기도 하고 나만의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제3의 공간은 가정의 무료함과 직장의 경직성,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즐거움과 편안함을 누리는 곳이다.

이 제3의 공간은 네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서열과 위계질서가 없고, 수다가 있고, 출입이 자유롭고, 나누어 먹을 음식이 있다. 내가 다니는 미용실이 가진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이유는 아마 이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용실에는 위계질서가 없다. 모두가 손님일 뿐이다. 그래서 자유롭다. 누구나 수다를 즐길 수 있다. 가족과 직장의 이야기, 동네 소식, 정치와 예능에 관한 이야기, TV에서 들은 잡다한 소식 등 어떤 이야기를 펼쳐내도 상관없다.

모두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주거나 맞장구를 치기도 한다. 때론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히기도 하지만 가벼운 논쟁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먼 시골 동네 할머니가 집에서 싸온 음식을 펼쳐놓고 처음 보는 손님에게 권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미용실은 그곳을 출입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제3의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일해야 하는 우리의 직장은 어떤가? 모든 직장인들이 직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행복한 직장을 꿈꾼다. 그렇다면 직장을 제3의 장소처럼 만드는 것은 어떨까? 서열과 위계질서, 그리고 직원에 대한 통제를 없애고, 자신의 직위를 느끼지 않으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담화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진다면 아마도 음식을 싸들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음식은 원래 좋은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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