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과 한음의 옛이야기
상태바
오성과 한음의 옛이야기
  • 이병찬 대진대 교수
  • 승인 2015.01.21 11: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놈의 상투와 내시의 불알

오성의 해학1(중놈의 상투와 내시의 불알)

▲ 이병찬 대진대 교수

<설화의 위치>: 신북면 가채리에서 전승되는 설화이다.

<설화의 내용>: 하루는 오성이 아침에 조회를 나가는데 시간이 늦었다. 임금님을 모시는 조회시간에 늦어서, 이를 ‘어떻게 모면할까’ 궁리했다. 그러다가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말하기를, “아! 참 오늘 별꼴을 다 보겠다. 아니 오다가 중놈하고 내시하고 싸우길래, 그 싸움을 말리느라고 늦었다.” 라고 했다.

“그게 무슨 싸움이냐?”

라고 다른 이들이 물으니 “아, 글쎄. 내시는 중놈의 상투를 쥐고 중놈은 내시의 불알을 쥐고 싸우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것을 말리다 늦었단 말씀이야.”

그러자 조정 백관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래서 임금님 조회에 늦은 것을 모면할 수 있었다.

<설화의 의미>: 오성대감 이항복이 조회에 늦은 난처한 상황을 재치와 임기응변으로 모면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선조실록에도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서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중놈의 상투’와 ‘내시의 불알’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에서 당대 당파싸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풍자하는 의미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여러 문인들의 문집에도 전재되어 인기리에 읽혔던 설화이다.

오성의 해학2(알 못 낳는 수탉)

<설화의 위치>: 화현면 화현리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설화의 내용>: 선조 임금이 오성의 지혜로움을 시험하기 위해서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많은 대신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저녁에 짐이 주연을 베풀 테니, 모두들 술 한 잔씩을 나에게 권하고 안주로는 계란 한 개씩만 올려라. 지금 이 얘기는 너희들만 알고 있고, 오성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게 하여라.”라고 하였다.

저녁이 되어 영의정부터 차례로 나와,

“전하, 제 술 한 잔 드십시오.” 했다.

그리고는 도포에서 계란을 꺼내 “안주로는 이것을 드십시오.” 하였다.

드디어 오성의 차례가 왔다. 그런데 오성은 임금에게 술을 권하고 나서는 안주를 주지 않았다. 그러자, 선조는 “왜, 경은 술만 주고 안주를 안 주는고?” 했다.

이 때 오성은 대뜸 엉덩이를 탁탁 치더니, ‘꼬끼오’하며 닭 흉내를 내었다. 선조가 말하기를

“그게 무슨 소린고?” 하자, 오성은 “저는 수탉이기 때문에 알이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여기서 선조는 오성의 지혜로움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설화의 의미>: 오성의 순간적인 재치와 기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독자들로 하여금 저절로 무릎을 치게 하는 설화이다. 역시 선조실록에 전하는 유명한 일화의 하나로, 전국적으로 전파된 것이기도 하다.

오성의 해학3(오성의 장난)

<설화의 위치>: 화현면 화현리에서 채록된 작품이다.

<설화의 내용>: 옛날 송우리는 하송우리와 상송우리로 나뉘어져서 각각 별도로 장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포천에는 장이 없었기 때문에 하송우리의 장을 포천으로 빼앗아 왔다.

오성이 하루는 한음의 마부노릇을 했다.

한음이 말을 타고 양반이 되고, 오성이 상놈이 되어서 한음의 말을 끌었다. 이렇게 해서 송우리 주막거리에 다다르자,

“나리, 점심을 드셔야죠?”

라고 오성이 말을 하니, 한음은 “암, 먹고 가야지. 저기 가서 팥죽 한 그릇을 사 가지고 오너라.” 했다.

오성이 “예,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하고 팥죽을 사러 갔다.

팥죽 한 그릇을 산 오성은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옷에 쓱쓱 닦은 후, 팥죽을 ‘휘이’ 저으며 한음에게 가지고 갔다. 그것을 보고 한음이 “야, 이놈아! 그것을 더럽게 저으며 가지고 오면 어떻게 하느냐?” 고 했다.

오성이 말하길 “제 코가 여기에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성은 한음의 점심을 굶긴 채로 한양으로 갔다고 한다.

<설화의 의미>: 마치 오성과 한음이 포천에서 함께 살았던 것으로 그린 설화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들이 포천에서 서로 어울렸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은 과거시험장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연보나 행장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한음 20세, 오성 25세) 포천의 자작리에는 한음의 외가가 있었고, 가산면에는 오성의 생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지역민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지어낸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오성의 해학4(오성과 한음의 내기)

<설화의 위치>: 이동면 장암4리에 전해오는 설화이다.

<설화의 내용>: 오성과 한음은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 그런 중 오성이 약혼을 했다. 옛날 양반들은 약혼하고도 부인될 사람을 못 만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성도 약혼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한음이 오성에게 말하기를, “네 부인될 사람에게 말을 시키면 내가 한턱을 내고, 말을 못시키면 네가 한턱을 내라.”

라고 해서 오성은 ‘그러마’하고는 둘은 내기를 했다. 오성은, “그럼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작대기를 들고 날 때려죽인다고 쫓아만 오너라.”

하니 한음이 작대기를 들고 ‘이놈 때려 죽인다’고 하며 쫓아 왔다. 오성은 계속 쫓겨가다가 자기 처갓집으로 들어갔다.

마침 마루 대청에 서 있던 자기 약혼녀의 치마 속으로 기어 들어가

“부인, 나 좀 살려주쇼!” 하니 약혼녀가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여보시오, 약혼을 했으면 겉만 봐야지, 속까지 볼랍니까?”

라고 말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오성은 한음과의 내기에서 이겼다고 한다.

<설화의 내용>: 앞의 설화와 마찬가지로 둘이 어릴 때부터 친구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오성의 짓궂은 성품이 발동된 비슷한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비슷한 유화를 생산하고 유포시켰다. 이 이야기도 앞의 3과 같이 ‘오성과 한음’이 동시에 등장하여 진행되는 이야기는 대체로 오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고, 한음은 비교적 수동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다. 그 이유는 추측컨대 두 사람의 성격적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다. 오성의 활달하면서도 해학적인 면모는 여러 기록에서 드러나고, 한음은 어려서부터 ‘총각정승’으로 불릴 만큼 점잖고 단정하면서도 모범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 병 찬(대진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